신발촌[신발조선족자치향]

한자 新發村[新發朝鮮族自治鄕]
중문 新发村[新发朝鲜族自治乡]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내몽고자치구 오륜패이시 아영기 신발조선족자치향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가구수 2,808호
인구[남/여] 1.17만
개설 시기/일시 1948년 3월
변천 시기/일시 1947년 12월
마을 내몽고 자치구(內蒙古自治區) 지급 행정구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 아영기
정의

내몽고 자치구 지급 행정구 후룬베이얼시[呼倫貝爾市] 아영기[阿榮旗] 내에 위치한 내몽고 유일의 조선족향 내 조선족 마을.

개설

내몽고 자치구 신발 조선족향은 내몽고 자치구 내 유일한 조선족향이며, 신발 조선족 자치향의 향장은 조선족이다. 1956년 향정부가 설립되었으며 행정 구획은 7개 행정촌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발 조선족향의 면적은 162.2㎢이며 경내에는 조선족, 한족, 몽고족, 악온극족(鄂溫克族), 달알이족(達斡爾族), 만족(滿族), 석백족(錫伯族) 등 7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류 민족은 조선족이다.

총 호수는 2,808호이며, 인구는 11,700명이다. 이 가운데 신발, 동광 2개 촌(村)은 조선족 집거지이며, 신발 조선족향의 조선족은 1,236명으로, 10.5%를 차지하고 있다. 신발촌은 신발 조선족향 내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족 촌이다.

신발촌은 형태나 규모면에서 내몽골에서 가장 큰 조선족 집단촌이다. 아영기 조선족 교육의 시발점인 신발 조선족 소학교은 폐교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현재의 신발 조선족향은 1930년대 만주사변 직후 일본이 만주 일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자, 간도를 중심으로 만주 일대에 살던 조선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정착 1기는 1947년 12월,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2년 여 난민 생활을 하던 150여 호 1,000여 명의 조선족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배치와 박재훈, 최병륜 등의 주도로 현재의 신발촌으로 와서 마을을 건설하였다. 정착 2기는 1948년 3월, 허세영의 주도로 통료, 우란호트, 조남 등에서 이주해 온 160여 호 조선족들이다. 이들은 신발촌 서북 지역과 동남쪽 아륜하 연안을 따라 논농사를 짓고, 현재 신발조선족향의 동광촌고산촌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신발촌은 해방 후에 형성된 가장 오래되고 조선족이 많은 마을이며, 선대의 노력과 중국의 소수 민족 정책의 우수성으로 조선족 자치향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내몽고 자치구 내의 조선족 자치향의 조선족 마을이라는 특수성으로, 국가로부터 소수 민족 우대의 이중적 혜택과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혜택으로 비교적 부유한 마을을 유지하고 있다.

현황

신발향은 내몽고의 유일한 조선족향이다. 현재 촌장은 당 지부 서기를 겸직하고 있으나,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어서 향후 마을의 일을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 우려되고 있다.

참고문헌
  • 김주용, 『역사를 따라 걷다-내몽고·흑룡강성』(선인, 2013)
  •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마을 현황 연구』(재외동포재단 2014년도 조사 연구 용역 보고서 4, 2014)
  • 「신파 조선족향」『중국 행정 구획 총람』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55131&cid=43792&categoryId=51740
  • 「내몽골의 유일한 조선족향을 찾아서」
  • http://cafe.naver.com/xinxinjiaohui/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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