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사동촌[용정시]

한자 咸沙洞村[龍井市]
중문 咸沙洞村[龙井市]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삼합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개설 시기/일시 동치(同治-1875) 중기
변천 시기/일시 1911년 2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0년대
마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삼합진
정의

길림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용정시(龍井市) 삼합진(三合鎭)에 있는 행정촌.

개설

연변조선족자치주 지명지에 의하면 함사동촌은 동치(同治-1875) 중기에 형성되었다. 1911년 2월의 「도문강 도선장 및 도섭장 위치 략도」에 의하면 함사동촌은 사동(沙洞)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북한쪽 학포(鶴浦) 마을과 건너다닐 수 있는 배 한척이 있는 도선장과 3갈래의 도섭장이 있었다. 이로 볼 때 함사동촌 이주민들이 아주 활발히 오간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인터뷰에 의하면 함사동에서 상탄(上灘) 마을로 가기 전 장시 발짝 바위가 있던 곳에 나루터가 있었는데 배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인부들이 이 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다시 기차를 타고 용정으로 일하러 왔다가 다시 이 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1916~1917년「한국 오만분의 일 지형도」에는 7개의 블록이 있으므로 적어도 7가구 이상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중국 측에서는 남쪽으로 강역골(江域洞), 샘물평(泉水坪), 학성(鶴城) 마을이 있고, 학성 마을에는 순경소(巡警所)까지 있었다. 북쪽으로는 상탄 마을과 인접하여 있으며, 북한쪽으로는 상탄과 함사동 사이에 학포동(鶴浦洞)이 있다.

2006년 답사에 의하면 중국 측 함사동 마을의 남쪽에 여전히 강역, 천수, 학성동이 있고, 북쪽에는 여전히 상탄 마을이 있어 1916~1917년도와 비교했을 때 주변 마을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칭 유래

1984년에 출판된 연변조선족자치주 지명지에 의하면 마을 지명은 한글 지명으로 모래가 많아 지어진 이름이라 하였다. 그러나 인터뷰에 의하면 ‘함정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하여 ‘함사동(陷死洞)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1970년대에 북쪽에 수전을 만들면서 물 도랑을 팠는데 죽은 사람의 뼈가 무더기로 나왔다고 하였다. 이로 볼 때 처음 명칭은 함사동(陷死洞)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나중에 함사동(咸沙洞)으로 고쳤으리라 추측된다.

참고문헌
  • 최효성·임진화·김태영,「두만강 북안 조선족 농촌 마을 공간 구조의 형성과 변화」(『대한 건축 학회지』 23-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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