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광촌[유하현]

한자 鮮光村[柳河縣]
중문 鲜光村[柳河县]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삼원포조선족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행정촌
면적 2,851무
가구수 222호
인구[남/여] 1,100명
개설 시기/일시 1947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2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9년 9월 29일
마을 길림성 통화시 유하현 삼원포 조선족진
정의

길림성(吉林省) 통화시(通化市) 유하현(柳河縣) 삼원포조선족진(三源浦朝鮮族鎭)에 있는 조선족 마을.

개설

유하현 삼원포조선족진 선광촌은 해방 전 평안도 출신 이주민들이 신흥 무관 학교가 있는 대고산 인근에 주거지를 조성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유하현 전체의 조선족은 2만 7,000여 명이며 선광촌에는 222호의 농호에 1,100명의 조선족이 집거하는 조선족 집중 마을이다. 동쪽으로 길을 사이에 두고 한족촌인 유가촌(劉家村)과 이웃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유하현 삼원포진 선광촌은 1947년도에 선광 조선족 자치촌으로 건립되였다. 당시 인구는 600여 명이었으며, 1950년 삼원포에 비행장이 건설되면서 부근의 조선족들이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1960년 자연 재해로 인하여 요령성(遼寧省)의 조선족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선광촌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1972년에는 벽돌 공장이 세워졌으며 인삼밭이 1,000여 무였던 데다, 산에는 목재가 많아 선광촌의 경제가 발달했었다. 당시 선광촌의 촌민 수입은 10부공에 2.30 위안으로 인근에서 수입이 가장 높은 동네로 소문이 났었다. 1976년부터 1978년 사이 마을의 수입으로 촌에서 자금을 지원하였고 선광촌 집중촌 건설이 이루어졌다. 촌민들의 초가집을 벽돌집으로 개량하였다.

현황

선광촌과 이웃하고 있는 유가촌은 한족촌이다. 두 마을 주민 간의 사이는 매우 돈독하여 두 마을의 행사에 서로 참석하고 돕고 있다. 두 개 촌에서는 우물 한 개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광촌에는 97호 144명의 거주민만이 남아있으며 대부분이 노인이다. 선광촌의 농토 2,851무는 유가촌 촌민들이 임대하여 경작하고 있다.

선광촌은 지난 2009년 9월 29일 국무원으로부터 전국 민족 단결 선진 집체의 영예를 받았다. 선광촌의 박성호 촌서기는 전국 소수 민족촌을 대표하여 길림성에서는 유일하게 촌서기로서 북경에 가서 회의에 참석하였다.

선광촌에는 70여 명의 노인들이 있으며 이들의 활동을 ‘독보조’라 부르고 있다. 1948년에 문맹 퇴치반을 꾸리면서 독보조를 구성하였는데,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84년 선광촌에 노인 협회가 건립되었으나 촌민들은 여전히 독보조라 부르고 있다.

선광촌의 노인 협회는 65세 이하의 활동조, 65세 이상의 독보조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노인 협회의 경비는 촌에서 매 해 1~2만 위안 정도를 지원해주며 주로 신문과 잡지를 구독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재외 동포 재단, 『중국 동북 3성 조선족 마을 현황 연구』(재외동포재단, 2014)
  • 「전국 민족 단결 모범촌—유하현 선광촌」(『길림 신문』, 2012. 3. 21)
  • http://kr.chinajilin.com.cn/area/content/2012-03/21/content_832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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