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녀 투강비

한자 八女 投江碑
중문 八女投江碑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기념비
양식 석조물
관련인물 냉운(冷運)|호수지|양귀진|안순복|곽계금|황계청|왕혜민|이봉선
건립 시기/일시 1986년 9월 7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5년
현 소재지 흑룡강성 목단강시
정의

1938년에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투강한 조선인 포함 8인의 여성 유격 대원을 기리기 위해 흑룡강성목단강가에 세워진 동상.

개설

1938년 10월 동북 항일 연군 제5군 제1사 소속의 30명의 여성 유격 대원들이 목단강 하류에서 숙영을 하던 중 밀정의 밀고로 일본군에 포위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 관동군은 ‘3강 대토벌’을 감행하고 있었다. 이에 8명의 여전사들은 본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강변쪽에 남아 일본군을 유인했다.

이들 덕분에 본대는 무사히 빠져 나갔으나 8명의 여전사는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맞서 싸우다 굴복하지 않고 우스훈하(島斯渾河)에 투강하였다. 8명의 여전사는 제2로군 제5군 부녀대의 지도원 냉운(冷運)과 반장 호수지·양귀진, 피복 공장의 공장장 안순복(安順福), 그리고 전사 곽계금·황계청·왕혜민·이봉선(李鳳善) 등이다. 이 가운데 안순복·이봉선이 조선인이었다.

건립 경위

동북 항일 연군 제2 로군 사령관 주보중(周保中)은 ‘팔녀 투강’의 이야기를 듣고 ‘우스훈하 강변 목단강가의 열녀’라는 제사를 남겼다. 중국은 ‘팔녀 투강’을 소재로 한 영화 ‘중화의 아들딸’들을 제작했다.

목단강시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1986년 9월 7일 빈강 공원 광장에 팔녀 투강 기념탑을 건립했다. 중앙 미술원이 창작을 맡고 사천 미술 학원이 조각했다. 당시 전국 정협 부주석이었던 강극청(康克淸)이 '팔녀 영령은 영생 불멸 하리라'는 제사를, 주은래 총리 부인인 등영초(鄧潁超)가 ‘8녀 투강'이라는 기념비의 제사를 썼다.

형태

팔녀 투강비는 부상당한 동료를 안고 앞으로 이동하고 그 뒤에서 주변을 살피며 여전히 힘차게 손을 치켜들고 전진하는 여전사들 사이로 한복 저고리를 입고 있는 조선족을 형상화했다.

금석문

팔녀 투강비의 벽에는 목단강시 인민 정부가 1988년 8월 1일 ‘팔영 열녀 명지(八英烈女銘志)’를 새겨 그들의 업적과 함께 팔위 여 열사(八位女烈士) 명단, 소속을 밝혀놓았는데, 안순복과 이봉선 열사 아래에는 ‘조선족’ 임이 명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팔녀 투강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과 경외심은 대단하여 중국의 항일 투쟁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추앙받고 있다. 북경노구교의 중국 인민 항일 전쟁 기념관과 하얼빈의 동북 열사 기념관에도 팔녀 투강 삽화가 있다.

참고문헌
  • 「팔녀 투강 전설의 주인공 안순복」(『길림 신문』, 2013. 4. 26)
  • 「항일 투쟁의 상징 목단강시 '팔녀 투강'」(『코리안 스피릿』「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27, 2015.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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