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한자 滿洲
중문 满洲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중국 동북부 지역의 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黑龍江省)·요령성(遼寧省)·내몽고자치구(内蒙古自治區) 등을 아우르는 지역을 통칭하는 단어.

지리학적 의미

만주(滿洲)는 북쪽과 동쪽으로 흑룡강우수리강(烏蘇里江)을 경계로 시베리아의 남쪽에 위치하고, 남쪽으로는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접해 있다. 현재는 중국 땅이지만 한인들이 두만강압록강을 건너 이주한 곳이고 몽골의 고향이기도 하며 두 번이나 중국을 지배했던 만주족의 발상지이다. 한때는 러시아가 발을 걸쳐 놓았던 곳이기도 하다.

명칭 유래

만주’라 불리게 된 것은 중국 한족이 여진(女眞)을 중국어로 읽으면 ‘주션’인데, 청 태조누르하치[努爾哈赤]가 ‘노예’라는 뜻이라 하여 그 명칭을 폐기하고 ‘만주’를 공식적인 유일한 민족 명칭으로 선포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만주(滿洲)’의 어원은 만주(滿住)인데 이는 당시 라마교에서 숭배한 문수 보살의 ‘문수(文殊)’라는 문자가 전환된 것이라 한다. 후에 만주(滿洲)로 바뀌었다.

청나라는 중국 전역을 18성으로 나눠 통치했다. ‘만주 지역은 청나라 시조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특별 행정 조직을 설치해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 등 세 성으로 나눠 통치했다. 1911년 신해 혁명 이후로는 ‘만주’ 대신에 ‘동북’이란 명칭이 사용되면서 이들 세 성이 ‘동북 3성’이라 불려졌다. 동북 3성 중에서 최대 도시는 심양(瀋陽)이며, 그밖에 하얼빈(哈爾濱)·장춘(長春)·대련(大連)·치치하얼[齊齊哈爾]·길림(吉林) 등의 도시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이곳에 괴뢰 국가인 만주국이 수립되었기 때문에 ‘만주’라는 용어 자체가 식민지 유산이라 여겨 그 지역을 ‘동북 지구(東北地區)’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한국·일본 등지에서는 ‘만주’라는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며, ‘동북 3성’이란 말과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만추리아(Manchuria)’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만주는 지역에 따라 동만(東滿)[연길(延吉)·혼춘(琿春) 등], 북만(北滿)[길림·장춘·하얼빈 등], 남만(南滿)[심양 등]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만주는 두만강 북쪽을 북간도[또는 동간도]라고 칭하기도 하고, 백두산 서쪽의 압록강 하류 유역인 남만주를 서간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간도 지방'이라고 하면 북간도를 가리킨다.

만주 역사

만주는 역사적으로 고조선을 비롯하여 발해가 웅거하고 있던 곳이다. 이외에도 만주에는 말갈족·선비족·거란족·여진족·몽고족·만주족 등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성장·소멸하였다. 12세기에는 여진족이 금을 건국하여 만주를 다스렸고, 13세기에는 몽고족이 차지하여 원나라 땅이 되었다가, 명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한 때 한족이 차지하였다. 그 뒤 17세기 초 여진족의 후예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면서 다시 여진족이 만주를 차지하였다.

후금을 청으로 국호를 바꾼 뒤, 대부분의 만주족이 중국 관내(關內)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에 1677년 청나라 정부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1,000여 리 되는 지역을 청나라의 발상지라 하여 봉금(封禁) 지역으로 선포하고 이주를 엄금하였다. 그 결과 만주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의 남하정책, 화북 지역의 토비(土匪) 출몰, 한인들의 월경(越境) 등으로 봉금 정책이 실효성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변경 방어 목적에 고육지책으로 1870년대 봉금령을 해제하고 이민 실변 정책(移民實邊政策)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 뒤 중국 남방 지역 한족들은 물론이고 한인들의 만주 이주도 본격화되었다. 오늘날 연변이라고 불리는 북간도 지역에는 국경과 인접한 함경도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 서간도 지역에는 평안도 사람들은 압록강을 건너 이주하였다. 그 뒤 만주로 이주해 간 경상도·충청도·강원도 등지의 한인들은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북쪽인 흑룡강성·길림성 등지로 이주해 갔다.

1904년 2월에는 만주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 일기도 했고, 1909년 간도 협약으로 만주에 진출한 일본에 의해 안봉선(安奉線) 철도가 설치되었다. 1911년 신해 혁명 이후 중화 민국이 등장하면서 원세개(袁世凱)를 필두로 장작림(張作霖)·장학량(張學良) 등의 북양 군벌(北洋軍閥)이 세력을 떨쳤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3월 괴뢰 만주국(滿洲國)을 수립하면서, 만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1930년대 이후 조선인들이 만주에 대거 강제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안전 농촌’이란 곳에 수용되어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한편, 만주 지역은 한인들의 독립운동의 기지였다. 1910년 8월 경술국치 이후에는 한국의 독립운동의 기지로서 항일 전쟁이 전개된 곳이다. 특히 1920년대 무장 항일 독립군이 일제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이 벌어진 지역도 이곳이다. 1930년대에는 민족주의 계열 국민부(國民府)조선 혁명당(朝鮮革命黨)조선 혁명군, 신민부(新民府)한국 독립당(韓國獨立黨)한국 독립군만주에서 활동하였다. 사회주의 계열로는 동북 항일 연군(東北抗日連軍)이 이곳에서 일본군과 항일전을 벌였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한 뒤에 벌어진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몰아낸 뒤에 만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조선족 약사 편찬조, 『조선족 약사』(백산 서당, 1989)
  • 윤휘탁, 『일제하 만주국 연구』(일조각, 1996)
  • 역사학 연구회,『만주사 연구』(경인 문화사, 1997)
  • 고구려 역사 재단, 『만주 : 그 땅, 사람 그리고 역사』(고구려 연구 재단, 2005)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