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상경 용천부

한자 上京 龍泉府
중문 上京龙泉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발해진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발해
상세정보
개념용어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발해진에 있는 발해의 세 번째 도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756년
유적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발해진
정의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발해진에 있는 발해의 세 번째 도성.

개설

상경 용천부발해의 제3대 문왕이 756년에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이후, 780년대 후반부터 793년경까지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로 일시 천도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926년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도성으로 사용되었다.

한 동안 동경성(東京城)으로 불렸으나, 동경 용원부와 혼동하기 쉬워 지금은 상경성(上京城)으로 부른다. 외성(外城), 황성(皇城), 궁성(宮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둘레가 약 16㎞에 이른다.

상경성의 명칭과 조사·발굴 상태

상경 용천부는 한동안 동경성(東京城)으로 불렸으나, 동경 용원부와 혼동하기 쉬워 지금은 상경성(上京城)으로 부른다. 20세기 초부터 러시아와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조사 되기 시작 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중국 측에서 지속적인 발굴을 시행하여, 상경성의 구조가 꽤 상세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궁성을 비롯한 일부 유구들은 기초부를 복원하여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상경성의 구성과 형태

상경 용천부는 외성(外城), 황성(皇城), 궁성(宮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둘레가 약 16㎞에 이른다.

상경성의 북쪽 중앙에 위치한 궁성은 장방형의 평면 형태로, 동서 너비 620m, 남북 길이 720m이며, 전체 둘레는 2,680m이다. 네 모서리에는 각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지는 남문 3개와 북문이 있는데, 정남문이 정문이다. 오봉루(五鳳樓)로 불리는 정문에는 동서 길이 42m, 남북 너비 27m, 높이 5.2m의 평대가 남아있다. 평대 위에는 각 열이 10개의 초석으로 구성된 7열의 초석이 잘 남아있다. 평대의 좌우에는 너비 5m, 길이 12m의 문지가 남아있다. 궁성의 남벽 바깥쪽으로는 기저부 너비 1.65m, 상단부 너비 2.5m, 깊이 1.8m의 해자가 있다.

궁성 내부의 건물지는 4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중심 구역에 궁전 건물지 5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나머지 구역에는 부속 시설들이 있다. 궁전 건물들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제4 궁전지와 서쪽 구역의 침전지에서는 구들 시설이 확인되었다. 제2궁전지 옆에는 팔보 유리정(八寶琉璃井) 이라는 우물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동쪽 구역[동액성]에는 어화원(御華院)이라는 정원터가 보존되어 있다.

황성은 궁성과 그 양쪽 부속 구역의 남쪽에 있는데, 크기는 동쪽 447m, 서쪽 454m, 남쪽 1,045m, 북쪽 1,050m로, 전체 둘레는 2,996m에 달한다. 황성은 가운데 222m 길이의 남북으로 난 대로를 기준으로 크게 동서 두 구역으로 나뉜다. 대로의 양쪽 끝은 궁성과 황성의 정문이 이어진다. 성문은 동, 서, 남쪽에 설치되어 있다. 남문에는 동서 길이 28m, 남북 너비 9m, 높이 2m의 평대가 남아 있다.

황성은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관청 건물들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원(內苑)은 궁성에 부속된 시설로 발해 왕실이 사용한 특수 공간이다. 위치에 따라 북내원, 서내원, 동내원으로 구분된다. 내부에서는 담장, 우물,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외성은 동서가 긴 장방형의 평면 형태인데, 동벽 3,358m, 서벽 3,398m, 남벽 4,586m, 북벽 4,946m로, 전체 성벽의 둘레는 16,288m에 달한다. 성벽의 축조 방식은 성벽 안팎 양쪽으로 성돌을 가지런히 쌓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거나, 외곽은 돌로 쌓고 가운데는 흙으로 채운 방식 등이 확인된다. 성벽의 기저부 너비는 14~18m, 상단부 너비는 1~3m, 높이는 3.5m 가량이지만, 원래는 기저부 너비 16~18m, 상단부 너비 6~7m, 높이 6m 가량으로 추정된다.

외성의 네 모서리에는 각루를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 밖에는 해자가 있었는데, 동벽과 북벽 바깥쪽에 그 흔적이 잘 남아있다. 성문은 모두 10~12곳으로 추정된다. 외성 내부에는 남북과 동서 방향의 도로가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체가 바둑판 모양의 방(坊)으로 구획되어 있다.

큰 방의 경우에는 동서 너비 490m, 남북 길이 360m이며, 작은 방은 동서 너비 490m, 남북 길이 250m 가량이다. 구조는 4개의 방이 한 단위를 이루어 전(田)자 모양으로 구획되어 있다. 황성 정문부터 외성 정문까지는 너비가 110m에 달하는 주작대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남북 길이는 약 2㎞이다.

한편, 성 내부에서는 여러 곳의 절터가 확인되고 있는데, 2호 절터에는 아직까지도 발해의 석등과 석불이 남아있다.

상경성은 오랫동안 발해의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만큼, 그 주변에는 삼릉둔(三陵屯) 고분군, 대주둔(大朱屯) 고분군, 홍준어장(虹鱒漁場) 고분군, 칠공교(七孔橋)와 오공교(五孔橋)의 다리 유적, 행산(杏山) 가마터 등 많은 발해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참고문헌
  • 동북아역사재단, 『발해의 역사와 문화』(동북아역사재단, 2007)
  • 黑龙江省文物考古研究所, 『渤海上京城』(문물 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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