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욱

한자 李旭
중문 李旭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시인
성별
대표관직|경력 『조광』 간도 지사 사장|만주 예문 협회 문학 국장
출생 시기/일시 1907년 7월 25일
몰년 시기/일시 1984년 2월 26일
추모 시기/일시 1988년 9월
출생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현
거주|이주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현
사당|배향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현
정의

일제 강점기 간도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가계

1907년 7월 블라디보스톡신안 마을[고려 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3세 때에 부친을 따라 길림성 화룡현 노과향으로 이주했다. 1914년 화룡 제8 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한문학자인 아버지 이한을에게서 중국과 조선의 고전 한시를 배웠다.

활동 사항

1923년 용정 동흥 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였으나 가계의 어려움으로 중퇴하였다. 1924년 훈춘창동 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계몽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간도 일보』에 「생명의 예물」을 발표한 후 「눈」, 「봄비」, 「님 찾는 마음」[1930], 「송년사」[1935], 「금붕어」[1938] 등을 창작·발표하였다.

『민성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야학을 꾸려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계몽 사상을 전수하였으며 지방 토호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 일보』의 만주 특파 기자로 활동하였고, 1942년 『조광』지사 사장을 하면서 시인 김조규와 함께 『재만 조선 시인집』을 발행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만주 예문 협회의 문학 부장, 동라 문인 동맹, 시문학 분과 책임자, 연길중소 문화 협회의 문학 국장으로 일하면서 새로운 예술 단체를 정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51년 11월부터 연변대학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창작 생활을 하였다. 1956년 11월에는 중국 작가 협회에 가입하여 연변 분회 이사가 되었다. 1980년 『이욱 시선집』과 장편 서사시 『풍운기』를, 1982년 서정시 『땅의 노래』를 발표하였다. 1984년 2월 26일에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사망 이후 연변대학에서 추도식을 거행하였으며, 1988년 이욱 시비가 화룡현 노과향 호곡령 정상에 설립되었다.

참고문헌
  • 조규, 「在滿詩人·時作品 硏究 Ⅱ;李旭의 時를 중심으로」 (『인문과학』 22, 숭실 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1992)
  • 김해응, 「이욱 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 이욱, 『20세기 중국 조선족 문학 사료 전집』 제2집 (중국 조선 민족 문화 예술 출판사, 2002)
  • 석화, 「중국 조선족 시문학의 개척자 이욱의 생애와 시세계」(『한국 문학과 예술』 8, 숭실 대학교 한국 문예 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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