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

한자 姜敬愛
중문 姜敬愛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소설가
성별
대표관직|경력 『조선 일보』 간도 지국장
출생 시기/일시 1906년 4월 20일
활동 시기/일시 1915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활동 시기/일시 1923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1월
몰년 시기/일시 1944년 4월 26일
추모 시기/일시 1999년 8월 8일
사당|배향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정의

일제 강점기 하층 여성을 대변한 조선족 여성 소설가.

활동 사항

강경애(姜敬愛)[1906~1944]는 1907년 황해도 송화에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의붓아버지 아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강경애는 10세에 소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평양숭의 여학교에 진학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여학교 생활을 통해 계급 의식과 반일 의식을 갖게 되었고 1925년 3학년 때는 동맹 휴학을 이끌다가 퇴학을 당했다. 1924년 5월 『금성』지에 ‘강가마’라는 필명으로 「책 한권」을 발표한 후 계속하여 「가을」[1925], 「파금」[1931] 등을 발표했다.

결혼 후에는 용정의 동흥 중학교 교사로 일했다. 강경애는 그곳에서 『조선 일보』 지국장까지 역임하며 창작으로 예술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1942년 건강 악화로 장연으로 돌아와 병고에 시달리다가 1944년 4월 26일 생을 마감했다.

학문과 저술

강경애는 창작 초기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특징을 보이는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다. 반면 1930년대 후반 간도 생활을 한 이후에는 작품에서 상실감과 좌절감을 주로 표현하였다. 또한 여성 문제를 계급 문제로 다룸으로써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현실 인식을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어머니와 딸」, 「월사금」, 「부자」, 「젊은 어머니」, 「채전」, 「축구전」, 「유무」, 「소금」, 「인간 문제」, 「동정」, 「모자」, 「원고료 이백원」, 「해고」, 「번뇌」, 「지하 촌」, 「파경」, 「산남」, 「어둠」,「마약」, 「검둥이」 등 주요작품들이 간도에서 창작되었다.

상훈과 추모

1999년 8월 8일 연변조선족자치주용정의 비암산일송정에 ‘여성 작가 강경애 문학비’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 강경애·최원식 편, 『인간 문제』(문학과 지성사, 2010)
  • 김영임, 「강경애 소설 연구」(경기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5)
  • 최학송 , 「강경애 소설의 주제와 변모 양상 연구」(인하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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