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해

한자 崔曙海
중문 崔曙海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역사/근현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소설가
성별 남자
대표관직|경력 『조선문단』 편집 위원
출생 시기/일시 1901년 1월 21일
몰년 시기/일시 1932년 7월 9일
출생지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
정의

일제 강점기 동북 3성에서 활동한 신경향파 문학을 추구한 대표적 소설가.

가계

최서해는 1901년 1월 21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중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모, 누이 하나, 의붓 동생인 누이가 하나 있다. 그의 부친은 지사풍의 인물로, 한말에 소관사로 지냈다. 일제의 강점이 시작된 후에는 만주로 들어가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활동 사항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서당 교육으로 인해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그는 학구열이 뛰어났으며 습작기에 『청춘』 현상 모집에 종종 투고하였고 다독하였다. 이때부터 춘원의 글을 탐독하였다. 1918년 18세가 되던 해에 만주의 간도로 이주하였다. 서간도에 있었던 21세[1921] 때에는 셋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첫딸 백금을 얻는다.

23세[1923]에 귀국하여 회령 역에서 부두 노동자 일을 하다가 1924년 양주 봉선사에서 「탈출기」를 썼다. 이후 『조선 문단』에서 방인근을 도우며 본격적인 문필 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조선의 고리키’라는 찬사와 함께 중견 작가로 부상하였고, 박영희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한다.

1926년 2월에는 첫 창작집 『혈흔』이 간행된다. 1927년 『조선 문단』의 편집 위원이 되었으나 『조선 문단』은 3호가 간행된 뒤 폐간되었다. 그 이후 동료들에게 비판을 받고 생활고를 겪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1929년부터는 『매일 신보』에 장편 「호외시대」를 300회 연재하고, 1931년 5월 제2창작집 「홍염」을 『삼천리』에서 간행한다. 1932년 7월 9일 의전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세상을 떠난다.

학문과 저술

1924년 『조선 문단』에 「고국」을 발표하고, 1925년에 「탈출기」를 발표하여 문단의 총아가 된다. 그 이후에 발표한 「기아」, 「살육」, 『홍염』, 「혈흔」 등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들을 발표함으로써 이농민의 좌절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1926년에 발표한 첫 창작집 『혈흔』과 1931년에 발표한 두 번째 창작집 『홍염』이 대표적이다.

묘소

최서해의 장지는 미아리 공동 묘지였다. 3년 후 문단인들에 의해 묘비가 세워졌으며, 그 후에 망우리로 이장되었다.

참고문헌
  • 김춘매, 「최서해 소설 연구」(성균관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7)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