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부락

한자 集團 部落
중문 集团部落
분야 역사/근현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일제가 1930년대 연변조선족자치주 지역에 설치한 한인 집거구.

집단 부락 설치 목적

일반적으로 만주 항일 무장 투쟁은 항일 무장 세력[주로 항일 ‘게릴라’]이 만주 농민과 긴밀한 유대를 가지고 그들을 인적·물적 모태(母胎)로 하여 전개되었다. 다시 말해 만주 농민들은 항일 투쟁에 필요로 하는 인적 자원·식량·무기·탄약·의복·약품·소금·성냥, 그리고 일·만군(日·滿軍)에 관한 각종 정보 등을 항일 무장 세력에게 제공했다.

그런데 만주국의 대(對) 게릴라 정책은 군사적 토벌을 위주로 무기를 든 무장 세력에게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커다란 토벌 효과를 거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만주국에서는 항일 게릴라와 이들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각종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만주 농민을 격리시키기 위해 집단 부락 정책을 실시했다.

집단 부락 운영

집단 부락 정책은 소위 일제의 치안 숙정 공작(治安肅正工作)의 일환인 ‘비민 분리(匪民分離)’ 공작의 핵심이었다. 일제는 이 공작의 추진 과정에서 주로 항일 유격구를 무주 지대(無住地帶 혹은 無人地區)로 설정한 뒤, 이 지구 내에 산재해 있던 촌락들을 불태우거나 파괴하고 이들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방비 시설이 갖추어진 집단 부락에 강제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의 일상 생활을 통제·감시함으로써 항일 유격대의 부락 내 잠입이나 주민과의 접촉을 막으려고 했다.

집단 부락의 효시로는 일제가 1916년부터 1931년까지 길림성 건안현(乾安縣)에 107개소를 건설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조선 총독부에서는 1933년부터 간도 지역에 28개소 집단 부락을 건설하였다.

만주국에서도 1933년부터 항일 유격 활동이 활발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단 부락을 건설해 항일 무장 세력과 주민들의 연계를 단절시키는 공작을 전개하였다. 조선 총독부에서 추진한 집단 부락에는 주로 재만 한인들이 수용되었고, 만주국에서 추진한 집단 부락에는 주로 중국인들이 수용되었다.

참고문헌
  • 유필규, 「1930년대 연변 지역 한인(韓人) ‘집단 부락(集團部落)'의 설치와 통제적 생활상」(『한국 독립운동사 연구』 30, 2008)
  • 신주백, 「한인의 만주 이주 양상과 동북 아시아-‘농업 이민’의 성격 전환을 중심으로」(『역사 학보』 213, 2012)
  • 유필규, 「1940년대 조선 총독부 만주 개척민 지원자 훈련소의 설치와 성격」(『한국 독립운동사 연구』 4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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