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실변 정책

한자 移民 實邊 政策
중문 移民实边政策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청나라 정부가 변강 지구의 국방을 강화할 목적에서 이민자들을 끌어들여 변방을 건설하기 위해 제정한 정책.

봉금 정책 폐지

1869년과 1870년 연이은 흉작으로 함경도와 평안도에 대기근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청나라는 압록강두만강을 봉금선(封禁線)이라 하여 조선인들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우리나라에서도 월강을 엄격히 금지하여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참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청나라는 만주 지역에 대한 봉금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봉금 지역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 되었다. 이에 조선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 만주 땅을 개간했다. 이때 이주한 조선인들이 1,000여 호가 넘었다고 한다.

이렇듯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해 왔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초중반 영국·미국·프랑스 침략 세력이 남으로부터 북에 이르고 러시아의 침략 세력이 북으로부터 남으로 뻗어나감에 따라 동북의 변방 위기는 날로 고조되어 갔다. 청나라는 변방을 개발하고 국방을 강화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에 1878년 청나라는 200여 년 간이나 지속 되어오던 봉금 정책을 폐지하였다.

당시 청나라의 국방 중점은 러시아와 인접한 길림(吉林) 동부 지역인 연변(延邊) 등지였다. 이에 1880년에 청나라 정부는 오대징(吳大澂)을 삼변독군으로 임명하고 길림 동북 변경 지대인 영고탑(寧古塔)·삼성(三姓)[지금의 의란현(依蘭縣)]·혼춘(琿春) 등 3변 지역의 변방 사무와 개간 실무를 감독토록 하였다.

이민 실변 정책 실시

1881년, 청나라 정부는 혼춘 협력을 부도통(副都統) 아문(衙門)으로 승격시키고 혼춘·삼성·영고탑 등 중로 변방 요지에 정변군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연변 일대를 정식으로 개방하고 혼춘에 초간총국(招墾總局)을 설치하고 혼춘 오도구(五道溝)와 흑정자(黑頂子), 남강(南崗)[연길]에 분국을 세워 '이민 실변 정책'을 실시하였다.

청나라 정부의 이민 실변 정책의 주요 대상은 관내의 한족 유민이었고 조선 이민은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엄격하게 금했다. 관내의 한족 유민을 모집하기 위해 초간총국에서는 사람을 관내에 파견하여 이민을 모집하였고 간민들에게 세금을 감면시켜 주거나 농기구와 식량을 대여하는 등 일련의 우대 정책을 실시 하였으나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하여 이민 실변 정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청나라 정부의 이민 실변 정책은 비록 조선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이미 조선인들의 대량 이주의 조건이 마련된 셈이었다. 특히 1860년대 말 이후 연속되는 자연 재해로 말미암아 한반도 북부 지방의 이재민들은 앞다투어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동북 지방에 밀려 들었다.

조선 정부도 할 수 없이 쇄국 정책을 폐지하고 이재민들이 월강하여 살길을 찾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리하여 19세기 중엽 이후 조선인들이 대량 중국 동북 경내에 들어와 토지를 개간하고 정착하게 되었다. 청나라 정부는 명목상 조선인의 월경을 단속하고 이미 들어온 자에 대해서도 소환시킨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환영하는 태도로 조선인의 이주를 묵인하였다. 이주해 온 수많은 재만 조선인들을 전부 내쫓는다면 이미 개간된 토지 또한 황무지로 변할 것이었기 때문에 청나라에서도 이를 묵인했던 것이다.

두만강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살던 조선인들은 가족을 데리고서도 하루 길이면 이주하여 올 수 있는 편리한 조건이었으므로 조선인들의 이주는 점점 늘어갔다. 중국의 지방 관리와 지주들은 오히려 조선족 이주민을 이용하여 연변을 개간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길림 지방 당국은 1885년에 두만강 이북 길이 350㎞, 너비 25㎞에 달하는 지역을 당지 조선인 이주민의 ‘전문 개간 지역’으로 확정하고 행정 관리를 강화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이주민의 동북 개척은 합법화 되었다.

이민 실변 정책은 실시된 몇 해 후부터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 수많은 황무지가 옥토로 변하고 수확량이 증가되었으며 수많은 곳에 도로, 역참, 시가지, 촌락들이 건설되었으며 국방력이 강화되고 변방 위기가 완화되었다. 이민 실변 정책은 중국 조선족의 형성과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 김춘선, 「1880~1890년대 청조의 ‘이민 실변’ 정책과 한인 이주민 실태 연구」(『한국 근현대사 연구』 8, 1998)
  • 김태국, 「한인의 만주 이주와 중국 한인 사회의 형성」(『중국 한인의 역사』 상, 국사편찬위원회, 2011)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