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교

한자 新宗敎
중문 新宗敎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정의

1900년경부터 중국 동북 3성에 진출한, 창립 시기가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조선의 여러 종교.

개설

구한말 자연 재해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한인들이 동북 3성으로 이주를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동북 3성은 한인의 생활 터전이 되었다.

일찍부터 이주 한인의 삶의 터전이 된 동북 3성에 1900년대를 전후하여 한국의 종교들이 진출하였다. 1897년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 남일랑 일행이 동북 3성에 종교를 포교한 이후 기독교를 비롯하여 시천교(侍天敎), 천도교(天道敎), 대종교(大倧敎), 청림교(靑林敎) 등 신종교도 동북 3성에 포교되기 시작하였다.

신종교는 크게 민족적 성향을 가진 천도교, 대종교와 친일적 성격을 가진 시천교, 제우교로 나뉜다. 이들 신종교는 해방 후 한인들이 대거 고국으로 귀국함에 따라 대부분이 기존 교세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원불교가 활발하게 교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시천교

시천교는 1900년경에 동북 3성에 포교되었다. 일제의 후원을 받은 시천교는 한때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지만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교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천도교

1860년 4월 5일 경주 용담정에서 수운최제우가 창명한 동학은 1905년 12월 1일 천도교로 전환하면서 근대적 종교의 틀을 갖추었다. 이러한 시기 동북 3성에 천도교가 포교되었다.

천도교는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교회 조직을 설립하였다. 이에 1906년 2월 동북 3성에 첫 천도교 조직이 설립된 이래 1910년대 북간도의 화룡현 교구, 연길 교구, 용정 교구와 서간도에 서변상계 교구, 서변하계 교구, 임강현 교구, 장백현 교구 등이 설립되었다.

1921년 이른바 '신유포덕(辛酉布德)'이라 불린 포교 활동으로 교세가 크게 확장되어 3천여 호, 1만 명의 교인이 있었다. 이를 토대로 천도교는 동흥 중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해방 후 대부분의 교인들이 귀국함에 따라 교단 조직이 와해되었다. 최근 옛 천도교 조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종교

대종교는 1909년 창립 직후 일제 강점과 탄압으로 총본사를 북간도 화룡현 삼도구로 이전하여 교세를 유지 확장하였다. 식민지 조선에는 남도 교구, 남만주에서 산해관 지역은 서도 교구, 동만주 일대와 연해주 지역은 동도 교구, 북만주 지역을 북도 교구, 중국관내와 일본, 미주 지역을 외도 교구 등 5 교구제를 마련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창동 학교 등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전개하였다. 청산리 전투 등 무장 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 대종교는 1941년 일제가 대종교인을 탄압한 임오 교변으로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으며, 해방 이후 대부분의 교인들이 귀국함에 따라 조선족 사회에서는 교단이 해체되었다.

〔원불교〕

원불교는 최근 들어 중국에 중국 교구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조선족의 주거지인 동북 3성에는 1994년부터 연길에서 포교를 시작하여 연길, 단동, 혼춘, 장춘, 심양 등 조선족 집거지를 중심으로 교당을 설치하여 교세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는 하얼빈 사범 대학 내에 대진 대학교 중국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포교를 전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 강돈구·윤용복·고병철·박미라, 『현대 중국과 한국 종교』(한국학 중앙 연구원 종교 문화 연구소, 2010)
  • 고병철, 『간도와 한인 종교』(한국학 중앙 연구원 종교 문화 연구소, 2010)
  • 계림, 「중국 조선족의 종교 신앙에 대하여」(『한국 종교』16, 원광 대학교 종교 문제 연구소, 1991)
  • 최봉룡, 「중국의 종교 정책과 조선족의 종교 문화」(『한국 종교』28, 원광 대학교 종교 문제 연구소, 2004)
  • 강돈구,「현대 중국의 한국 종교-동북 삼성을 중심으로-」(『종교 연구』54, 한국종교 학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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