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漫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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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random talk |
중문 | 漫谈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시대 | 현대/현대 |
설창예술 | 배우 한 사람이 웃긴 이야기로 관객에게 웃음과 사색을 전하는 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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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9년 |
배우 한 사람이 웃긴 이야기로 관객에게 웃음과 사색을 전하는 조선족의 설창 예술의 일종.
만담(漫談)은 조선족의 공연 예술로 설창 예술의 일종이다. 원래 공연 중 막간에 하던 광대 공연이 변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길림성 성급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담은 한 사람이 공연하는 조선족의 구연 예술인데, 줄거리와 성격의 묘사에는 현실적인 것이 많이 포함된다.
만담의 특징은 배우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배우 혼자서 여러 배역을 소화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양식인 재담과 차이를 갖는다. 즉, 한쪽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방이 옆에서 거들거나 반대하여 대화가 진행될수록 재미가 풍부해지는 재담과는 또 다른 양식을 취한다.
만담은 조선어의 특색을 가장 잘 이용하고 발휘하는 예술이다. 조선어는 영어나 중국어와 달라서 다양한 의성·의태어를 갖고 있다. 이를 이용하여 형용하는 것이 발달해 있다. 동시에 조선어는 그 자체로 운율과 박자를 갖고 있어서 구성과 조합에 따라 언어적인 재미가 더해지게 한다. 이로써 이야기하는 가운데에 모든 형상을 자세하게 관중들 눈앞에 묘사할 수 있다. 잘 가려진 말과 교묘하게 배열된 구성으로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내보이거나 미적 즐거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담에는 자연적이고 건강한 웃음소리 속에 민족 정신을 떨치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을 칭송하고 불량한 현실을 풍자하는 조선 민족의 풍부한 정신 문화 생활이 배어있게 된다.
만담 자체는 서울, 경기도 지방의 연희인 ‘재담 소리’가 기원이다. 재담을 만담으로 변형시킨 것은 신불출이었다. 이 만담이 조선족의 예술로 정착한 것은 1979년 이광수가 창작한 「개」를 강동춘이 공연한 것이 그 시초였다. 「개」는 개로 끝나는 150개의 단어를 이용한 만담으로, 만담을 연변의 대표적인 공연물로 만든 작품이다. 이후 강동춘은 연변 만담의 일인자로 칭송되며 군중들의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연변의 만담은 198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다. 그 시기에는 조선족 만담 창시자인 최수봉을 비롯하여 김창봉, 이광수, 강동춘 등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들이 연길시 조선족 구연단에서 활동했다. 1990년대까지 「술」, 「장타령」, 「웃음의 철학」, 「장생불사약」 등의 인기 작품이 무대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이제 만담은 무대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예술이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젊은 인재들이 만담 창작에 뛰어들지 않아 만담 작가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또한 만담을 공부하려는 인재도 적다.
두 번째, 대부분의 학생들은 만담을 그저 빠른 말로만 알고 있다. 말을 빨리 하는 연습은 그저 말을 잘 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일 뿐인데, 이를 만담 자체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만담이 독립적인 무대 표현을 통해 관객의 웃음을 터뜨리고, 그 속에 관객들로 하여금 사색하게 하는 예술이란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만담을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급변하였다. 인터넷과 한국 텔레비전 방송 등으로 인해 연극 무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문예 야회의 인기 종목이 만담이었는데, 지금은 문예 야회 자체를 보려하지 않는 것이다.
2010년 만담을 길림성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등 만담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만담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한다. 현재 연길시 조선족 예술단 구연부는 자료 수집, 인재 양성 등 만담을 되살리는 사업을 힘차게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