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한자 言論
중문 言论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중국 동북 3성에서 한국어로 제작 방송되는 신문과 방송 등의 대중 매체.

한글 신문 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는 “여러 민족은 자기의 언어·문자를 사용 및 발전시킬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동북 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이 한글로 된 언론 매체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이다.

중국 내에서 한국인이 만든 첫 신문은 1909년 창간한 『월보(月報)』와 1910년 『대성 단보(大成團報)』이다. 해방 이전에는 항일이나 계몽을 위한 목적에서 신문이 창간되었다. 이때에는 독립운동 단체 마다 자체적으로 기관지를 만들 정도로 많은 신문이 발행되었다.

해방 이후에 명칭이 바뀌기도 하였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과 여러 규모가 작은 신문들은 주 2간 혹은 일간 형태로 8절지 크기에 4면 정도로 계속 발행되었다. 당시에는 전문 언론인이 많지 않아 편집원과 기자들은 민족 출판사, 중앙 번역국, 연변교육출판사의 편집자, 당 및 정부 기관 간부, 도시의 중소학교의 교원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곤 했다.

해방 후 첫 한글 신문은 1945년 9월 창간한 『한민 일보』[1945.9-1945.11]였다. 그 뒤를 이어 『연변 민보』[연길, 1945.11-1946.5]·『인민 신보』[목단강, 1945.10-1948.3]·『길동 일보』[길동, 1946.5-1947.2]·『인민 일보』[연길, 1946.9-1947.2]·『길림 일보』[연길, 1947.3-1948.3]·『백성보』[왕청, 1946.10-1948.7]·『학습과 전투』[군정 대학 길림 분교, 1947.5-1947.12]·『시사 순보』[1947.5-1948]·『동북 한보』[장춘, 1946-1948]·『연변 일보』[연길, 1948.4-현재]·『신민 일보』[하얼빈, 1946.5-1947.4]·『전투보』[하얼빈, 1947.3-1948.3]·『민주 일보』[하얼빈, 1948.7-1949.3]·『어린이 신문』[하얼빈, 1948.5-1949.3]·『단결 일보』[통화·심양, 1947.11-1948.5] 등 16종이 발행되었다.

이들 신문들은 명칭 변경, 합병 등의 과정도 겪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46년 5월 『연변 민보』가 『길동 일보』로 바뀌었다가 1946년 9월 『인민 일보』에 합병되었다. 『인민 일보』는 1947년 3월 『길림 일보』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48년 3월 폐간되었다.

1949년 4월,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단결 일보』[심양]·『연변 일보』[연길]·『민주 일보』[하얼빈] 등 세 신문은 『동북 조선 인민보』[연길]로 합쳐졌다. 1954년 동북국이 없어지면서 예전처럼 각 지역에 신문들이 발행되었다. 1955년 1월 『동북 조선 인민보』가 『연변 일보』[연길]로 개칭되었고, 1957년 7월 『중국 조선족 소년보』[연길]·『목단강 일보』[목단강], 1958년 8월 『요녕 신문 조선문 판』[심양], 1959년 1월 『연변 청년보』·『소년 아동보』, 1961년 10월 『흑룡강 일보 조선문 판』[하얼빈] 등이 창간되었다.

당시 신문들은 정치·경제·중국 국내외 정세·민족 단결에 관련된 기사들과 농업과 교육 분야의 선구적인 인물들을 게재하였는데 대부분 중문으로 된 기사를 번역하는 수준이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조선족 언론도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요녕 신문』의 경우처럼 정간(停刊)되기도 하였고 조직 내부에 생채기를 입어야만 했다. 보도 내용도 홍위군들에 의한 문화 혁명에 관한 내용들로 채워졌고 조선족 기자와 편집인들은 5·7 간부 학교나 농장으로 쫓겨났다.

암흑기였던 문화대혁명이 지나가고, 1978년 12월 중국 정부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그 이후 10년 동안 언론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연변 일보』·『흑룡강 일보』는 정상화 되었고 『요녕 신문』은 1979년 1월 1일 복간되었다. 이어 1985년 길림성에 거주하는 120만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성급(省級) 신문인 『길림 신문』[연변]이 창간되었다. 그 뒤 『길림 신문』 본사는 장춘으로 이전하였다. 하지만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정부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1997년 1월 ‘신문 잡지 정비 계획’을 추진하면서 신문 매체 수가 줄어들었다.

2004년 현재 조선족 신문은 16개사가 있는데 일간·격일간이 4곳이고 나머지 12곳은 주간지이다. 주간지로는 『조선 문보』·『라디오 텔레비젼 신문』·『동북 조선족 과학 기술 신문』·『종합 신문』·『현대 가정』·『스포츠』·『조선족 중학생보』·『생활 안내』·『일요 특간』·『동북 저널』·『금일 요녕』·『연변대학보』 등이다.

한글 신문의 구조와 특징

조선족 신문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을 선전하는 역할을 한다. 국정 방침과 중국 국내외 뉴스 및 성(省)이나 자치주 정부의 방침과 뉴스를 우선 보고하고, 조선족의 소식과 성공 사례 등 시대적 이슈도 주요 뉴스로 전하고 있다. 조선족의 민족 단결을 강화하고 민족 경제와 문화 교육 사업을 발전시키며, 과학 기술을 전파하고 생산과 생활 개선 지도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민족 간부의 양성과 등용, 조선족문의 교육 문제, 기타 민족의 제반 문제들을 지적, 시정하고 있으며 특집 기사란을 통해 조선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 신문들은 빠르게 변화해 왔으며,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신문들과 자매 결연을 통해 신문의 선진화를 추구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세계로 눈을 돌려 세계 속 한민족과 유대를 강화하여 중국으로 진출한 75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주말판을 발행하고 있다.

1993년 말 『연변 일보』[일간]가 6만 부, 『흑룡강성 신문』[일간] 4만 부, 『요녕 조선어보』[격일간] 1만 부를 발행하였다. 1990년부터는 무료 신문들이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생활 정보 신문들로 나오고 있다.

『연변 일보』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당보로서 「오늘의 연변」·「아름다운 연변」·「연변 시장」·「장백의 임해」·「자랑 많은 지방 제품」·「청사에 길이 빛날 조선족 혁명 선열들」·「우리말을 바로 쓰자」·「해란강」 등의 고정란과 특집호 등을 만들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길림 신문』은 조선족 신문 가운데 유일한 성급 당보로 창간 초기 산재 지구의 특성을 고려하여 계몽적인 성격이 강하다. 즉 「세계 민족」·「세계 과학」·「세계 위생」·「세계 풍경」·「세계 명인」·「세계 기행문」 등의 고정란을 두어 기관지 성격보다는 민중지로서 지식 전파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인터넷 신문과 방송 체계를 갖추고 한국에 관한 사회 문제 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요녕 신문』은 국내외 뉴스 및 요녕성 정부의 방침과 뉴스를 1면에 배치하고, 요녕성을 비롯한 다른 성의 다양한 조선족의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특히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지방성과 민족성을 중시하여 「농촌 개혁」·「열심히 일하여 성공한 사람들」·「학교 생활」 등의 고정란을 배치하고, 「최근 조선어 학습 열기」·「대련 개발구 조선족 종업원」·「자랑스러운 기업인」 등의 특집과 「심양의 서탑과 한국」 등 다양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방송

중국 내 조선어 방송은 지역적인 범위를 기준으로 중국 전역에서 시청할 수 있는 전국 단위 조선어 방송, 성단위의 조선족 중심 방송, 소지역 단위의 지역 소식을 중국어 방송 도중 30-60분 분량의 방송 등으로 나뉜다.

전국 단위의 방송은 중국을 벗어난 외국에까지 송출되는데, 중앙 인민 방송국 조선어부[북경], 국제 방송 조선어부[북경]가 대표적이다. 중앙 인민 방송국 조선어부는 1956년 7월 개국하였는데 18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하루 3시간씩 방송한다. 시청 지역은 동북 3성과 한국·북한·일본을 비롯하여 내몽고·북경·천진·산동 등지까지 포함하고 있다.

중앙 인민 방송국 조선어부는 주요 편성 방침은 조선어부 전원 회의를 통해 결정되며 전체적으로는 중앙 인민 방송국의 결정에 따르고 있다. 한해 10만 달러 내외의 비용으로 제작, 운영되는데 얼마간의 광고 수입과 주로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주로 조선족에 관련된 뉴스와 경제, 생활과 오락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성단위 조선족 중심 방송국은 연변 인민 라디오 방송[연길]·연변 TV[연길]·연길시 R TV[연길]·흑룡강 조선어 라디오 방송 등이 대표적이다. 연변 인민 라디오 방송은 1948년 11월 개국하여 연변·동북 3성·북한 등에서 시청할 수 있다. 연변 TV는 1977년 12월 문을 연 뒤에 조선어로 첫 방송을 하였는데 시청 가능 지역은 연변에 국한되어 있다. 연길시 RTV는 1956년 개국하였는데 시청 가능 구역은 연길시이다. 흑룡강 조선어 라디오 방송은 1963년 2월 방송을 시작한 뒤로 평일에는 5시간, 일요일에는 7시간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시청 가능 지역은 흑룡강을 비롯하여 길림·내몽고까지에 이른다.

중국의 방송 시장 역시 급속히 팽창하였는데 1998년 현재 TV 방송국은 1847개, 라디오 방송국은 194개이다. 이는 2000년대 TV 수상기의 보급률이 100%에 달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조선족 방송국은 중국 국내외 소식을 조선족 지역에 전달하고 당과 국가의 제반 정책을 선전하며 중국의 민족 통일 전선 정책을 선전하여 각 민족 사이의 단결을 추진하고 중국 조선족의 정치 문화 자질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 언론 연구원 편, 『한국 신문 방송 연감』(한국 언론 연구원, 1994)
  • 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중국 조선 문화사 대계 8-신문 출판사』민족 출판사, 1993
  • 김원태·최상철, 「중국 조선족 동포의 우리말 신문 방송에 관한 연구」(『한국 언론 학보』 27, 1992)
  • 민형배, 「재중 조선족 언론의 현황과 특징: 동북 3성 신문 방송을 중심으로」(『세계화 시대 한민족 디아스포라와 네트워크 구축』, 전남 대학교 세계 한상 문화 연구단,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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