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자 文化
중문 文化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중국 조선족들이 역사 발전 과정에서 공유하는 행동 양식과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결과물.

조선족 문화의 형성

중국 조선족 사회의 문화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민족의 문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중국 문화의 특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주 민족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여, 한민족 문화의 씨를 중국이라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 옮겨 심어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조선족 특유의 새로운 문화를 일궈냈다.

이를 두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대표적인 과일인‘사과배’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주 한인이 함경도 북청에서 가지고 온 배나무 가지를 연변에서 야생하는 돌배 나무에 접목시켜 연변 특유의 새로운 과일을 개발해 낸 것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이주 초기의 조선족 문화는 한민족 문화를 계승하여 그 연장선 혹은 복사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에서 수백 년 간 한족을 비롯한 다른 민족의 이질성을 받아들이면서 조선족 특유의 새로운 민족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이는 조선족들의 정체성에서도 나타난다. 한민족이 유난히 많이 사용하는 표현 중에 ‘우리나라’가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아니면 ‘북한’을 가리킨다. 일본·러시아·미국 등지에 거주하는 한민족이 ‘우리나라’라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조선족들이 말하는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을 일컫는다.

조선족들은 중국 동북 변방의 개척자·보위자·건설자라는 자부심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인 오성기에 자신들의 피가 스며있으며 건국에도 직접 참여했다는 당당한 주인공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소수 민족으로서의 공동체 의식과 한민족 문화와는 다른 조선족 문화를 형성하였다.

조선족 문화와 교육

이주 한인들은 중국 내 다른 민족과의 접촉·충돌·적응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 조선족으로 거듭났다. 1911년 유하현 삼원포에서 경학사를 설립하고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독립군 양성운동을 추지하던 이상룡 등이 시도한 변장(變裝)운동이나 역사의 변장(變裝), 연변지역에서 중국인이 되기를 원치 않았지만, 토지를 획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널리 유행된 전민 제도(佃民制度), 중국 지방 당국의 조선인 구축과 억압 정책에 맞서 정의부를 비롯한 민족주의 진영에서 한교 구축 문제 대책 강구회·한족 문제 연합 강구회·귀화 한족 동향회 등 전담 기구를 설립하여 추진하였던 귀화 입적 운동이 이에 해당한다.

조선족이 중국이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의식주의 기본 문제를 해결한 뒤 가장 먼저 추진했던 것은 교육이었다. 이주 초기 서당 교육에서 출발하여 1906년 이상설이 용정에서 조선족 근대 교육의 물길을 터주었고, 1920년대 용정에 대성·은진·동흥 중학교들이 설립되면서 조선족 교육을 한 차원 끌어 올렸다. 1930년대 만주국 시기에도 교육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당시에 설립된 ‘재만 조선인 중등학교 창립 기성회’나 ‘봉천 조선인 학교 조합’ 등이 이를 대변해 준다.

교육에 대한 열정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어 1949년 4월 조선 민족 대학교인 연변대학의 설립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연변대학에서는 이후 10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조선족의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다. 이렇듯 교육에 투자한 결과 조선족은 중국 56개의 민족 가운데 문화 민족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조선족은 하나의 자치주인 연변조선족자치주와 하나의 자치현인 장백조선족자치현, 40여 개의 조선족 향(진)에서 민족 자치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조선족의 우수한 엘리트들이 지금 중앙과 지방 당정기관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중공 중앙 후보위원, 전국 정치 협상회의 부주석, 지방 당정 기관의 요직을 맡고 있는 고위급 간부가 적지 않다. 조남기·이덕수·전철수 등은 정치·행정 분야의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다. 또한 10만 명이 넘는 여러 전공별 전문가 그룹이 형성되었다. 수많은 교수·박사·전문가들이 과학 연구와 교육 영역에서 조선족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조선족은 문화 능력에서 여느 소수 민족에 비해 앞서 있다.

조선족 문화의 가치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 문화부·인사부에서 명명한 ‘전국 문화 공작 모범 자치주’로,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전국 사회 문화 선진현’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자치주와 자치현은 중국 국무원에서 명명한 중국 30개 소수 민족 자치현에서 3개 ‘민족 단결 진보 모범현’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조선족의 거주 지역은 처음에는 중국길림성·요령성·흑룡강성·내몽골 등지로 한정되었다. 그 뒤 1978년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조선족의 활동 무대는 점차 중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북경·천진·상해·광주·심수·대련·청도·연대 등 대도시와 연해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또한 한국·북한·러시아·일본·미국 등지로 비즈니스·노무·유학 등의 형식으로 적극적인 진출이 이뤄졌다.

조선족들의 활동 무대가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이란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갈고 닦은 타문화에 대한 탁월한 적응력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또한 한국·중국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조선족은 한국이라는 창구를 통해 세계의 선진 문화를 수용하고,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에 두루 익숙한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여 한·중 두 나라의 문화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선족들의 이러한 역할은 한·중 두 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언어 습득 능력, 현지 적응 능력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인 남성들이 조선족 여성을 사업 파트너로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많은 성공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조선족들은 한반도 통일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은 한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뿐만 아니라 양측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거중 조정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조선족은 1949년부터 1977년까지 사회주의 제도에서 살아왔고, 1978년부터 현재까지 추진된 개혁개방 속에 시장 경제의 원리를 터득하였다. 이에 조선족은 한국과 북한을 이어 줄 수 있는 문화 전환 기능을 가지고 있다. 50년 넘게 분단으로 생겨난 한국과 북한 사이의 이질성은 상대에 대한 이해 부족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빠른 시일 내에 통일을 이룩하는 데 있어 조선족 사회는 문화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민족의 문화를 바탕으로 중국 여러 민족의 문화를 흡수하여 형성한 조선족 문화는 두 가지 분명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조선족의 문화는 한민족 문화의 일부분이면서 중국 56개 민족 문화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민족이라는 민족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고국의 상황은 늘 그들의 주요 관심사이다.

그들은 한국이 거둔 성과에 긍지를 느끼고 북한의 경제 곤란에 동정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한국에도, 북한에도 갈 수 있는 자신들의 처지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중국 56개 민족의 일원으로 자신의 조국인 중국이 세계의 정치·경제 무대에서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긍지를 가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복잡다기한 성격의 문화가 바로 조선족 정체성의 본질이라 하겠다.

한민족 문화와 중국 문화에 두루 익숙한 조선족 문화는 그에 따른 약점도 있다. 양쪽 문화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문화는 어떤 문화여야 하는가? 어느 쪽 문화에 기울어져야 하는가? 등의 질문에 고민하고 방황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조선족 문화의 미래

1960년대 일었던 ‘조선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북한행을 택했다. 2003년 연말 한국에서 발행하였던 일부 조선족 ‘불법 체류자’들이 중국 국적 포기 청원은 모국 문화로의 기울임 현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조선족 민족 교육 취소론자들은 중국 문화로의 지향성을 보이기도 한다.

조선족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중국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조선족의 유일한 삶의 터전임이 분명하다. 이는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에 산다고 해서 완전히 자기의 민족 문화와 정체성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조선족은 지금까지 해온 대로 민족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적극적으로 중국 문화를 수용하여 사과배와 같이 중국에서 인정받는 민족 문화를 창조하는데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조선족 사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한반도나 중국 모두에 유리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조선족은 21세기 시대를 맞이하여 한반도와 중국 더 나아가 동북아의 미래를 나가는데 문화 가교자로서 중국과 한민족 모두에 소중한 자산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 정판룡, 『중국 조선족과 21세기』(흑룡강성 민족 출판사, 1999)
  • 강순화, 『중국 조선족 문화와 여성문제 연구』(한국 학술 정보, 2004)
  • 조성일,「조선족문화론강」(『문학과 예술』, 2006)
  • 황유복,「중국 조선족의 문화공동체」(해외 한민족 연구소, 2009)
  • 김태국,「중국 조선족 사회의 형성과 문화 성격」(『전북 사학』 4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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