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社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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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society |
중문 | 社会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
시대 | 현대/현대 |
1978년 개혁개방과 1991년 한중 수교 이후부터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살던 조선족 사회와 그 변화 모습.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 전에서 천명한 개혁개방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 사회를 강타한 코리안 드림은 조선족 사회의 극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키워드이다.
주지하다시피 간도를 비롯한 동북 3성 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사회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869년 무너져가는 조선 왕조의 백성들이 자연 재해와 기근을 피해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부터이다. 이 때 간도 지역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함경북도 주민 26,000명을 비롯해 대략 60,000명에 달한다.
이후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 중국 지역으로의 조선 백성들의 이주는 점차 가속화되었고, 이들이 바로 지금의 조선족의 주류가 되었다. 이들은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문화적 순수성을 고집하며 종족적 정체성(ethnic identity)을 고스란히 유지해왔다.
가장 최근에 실시한 2010년 인구센서스 당시 중국에서의 조선족 인구는 183만 929명이고,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5번째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조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길림성(吉林省)이고 조선족 전체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114만 5,688명이다. 이밖에 조선족은 요령성과 흑룡강성 등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길림성 안에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와 장백조선족자치현(長白朝鮮族自治縣) 두 곳의 민족 자치 구역을 보유하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산업화의 물결을 따라 잡기 위해 조선족은 기존의 거주 지역에서 벗어나 중국 연해지역으로 대규모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약 4분의 1이 베이징, 상해, 광저우, 선전, 칭다오 등지로 이주했다.
아울러 한중 수교 이후 많은 조선족들의 한국 진출도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가면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이룩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러시아, 미국, 유럽 등으로 활발하게 이주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 민족 가운데 타 지역이나 국가로의 이주가 가장 두드러진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족의 전통적인 거주지였던 동북 3성 지역과 연변조선족자치주, 장백조선족자치현 등지에서 그 집거지가 지속적으로 해체되어 가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1994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 일보』는 동북 지역에 사는 조선족 가운데 부자가 된 사람들의 부류를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첫 번째 부류는 중국내의 대도시로 진출해 장사를 해 돈을 번 조선족이다. 이들은 안목을 넓히고 재능을 길러 돈을 모은 치부의 선구자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외국에 사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부유하게는 됐지만 능동적으로 사업을 벌이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세 번째 부류는 고장에 남아 장사를 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도 일정한 발전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입지가 취약한 사람들이다.”
『인민 일보』는 세 가지 부류 가운데 첫 번째 부류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 소수 민족이 현재의 기회를 포착해 자신의 발전을 가속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상 해방’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폐쇄적인 사고를 타파하고 자기 발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대목은 조선족 사회의 공동화 현상이 이미 21년 전에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혁개방과 한중 수교로 말미암아 날로 해체되어 가는 조선족 사회가 당면한 문제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조선어 교육이다. 조선족 학교의 학생 수 감소는 조선족 어린이들이 모국어인 조선어를 상실로 이어진다. 등교 거리 문제 등으로 가까운 한족 학교에 보내는 사례가 이미 20년 전부터 발생했고, 이와 같은 현상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조선족 출신 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조선족 교육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50년 이내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조선족 동포들은 거의 한족에게 동화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의 산업화는 중국 내 대규모 노동력 이동을 견인했고 호구 제도로 인해 인구 이동 통제 정책이 작동되면서 조선족들의 사회 복지와 교육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따라서 조선족의 민족 공동체 유지와 발전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이밖에 결혼과 취업 등의 인구 이동과 출산율 저하, 급속히 확산되는 세대 간 단절 등으로 인해 젊은 조선족 세대들은 민족 정체성이 상당히 약화되었고 공동체 역시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조선족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각한 진통은 조선족 학계 안의 논쟁에서 잘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조선족 사회에 대한 조선족 학계의 연구는 주로 비관론과 낙관론으로 양분된다. 그 중 비관론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통상적으로 전통적 주거지의 붕괴, 이에 따라 민족 정체성 상실로 조선족 사회가 동화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낙관론자들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일개 성장통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낙관론은 소수의 의견이다. 낙관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선족 사회의 현실적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급속한 현대화와 더불어 중국 조선족 사회 역시 중국의 성장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앞에서 간략하게 열거했던 문제들이 생겨나는 주요한 원인은 조선족들이 처한 주변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한반도가 안정되고 한편 중국과의 교류에서 충분한 개방도가 보장된다면 조선족 사회는 앞으로 새로운 발전을 위한 강력한 모멘텀을 얻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발전은 조선족 구성원들로 하여금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면서 해체의 이유도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다.
결국 조선족 사회의 운명은 한반도의 상황과도 직결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한반도가 평화 통일을 달성하고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발전한다면 조선족 사회의 문화는 한반도문화를 지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문화적으로도 한반도와의 유대 관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조선족 사회 내의 인구 유동은 부단히 지속되고 있고 현실적으로 이러한 인구 유동을 막을 방법도 없다. 조선족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통탄으로 그 연구의 기조를 이루고 있고 현실적인 대안 모색은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개혁개방과 코리안 드림 등의 원인으로 불거진 조선족 사회의 인구유동과 집거지 공동화현상은 필연적인 현상이고 구성원들 스스로가 선택한 합리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진행된 조선족 사회의 디아스포라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조선족사회가 끝내 해체될 것이냐의 문제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사회는 끊임없이 자기의 정체성을 재구성해왔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제 그들 스스로 어떤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 임박한 것은 분명하다. 조선족 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지금부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