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한자 美術
중문 美术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20년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0년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1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7년 10월
정의

중국 동북 지역 조선족의 삶과 관련하여 공간과 시각의 미를 표현하는 예술.

개설

조선족의 미술은 다른 문화 예술과 마찬가지로 조선인이 한반도에서 동북 3성으로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다만, 조선족 미술은 자생적으로 발전한 측면과 중국과의 관련성을 맺으며 변화된 조선족 역사와 더불어 성장한 측면도 있다. 이를 세 단계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조선인의 이주 초기 한반도에서 형성·발전된 미술 유산과 전통을 가져와 그대로 보존 유지하면서 발전시킨 단계이다. 둘째는 1910년을 전후로 일제의 침략과 그에 따른 항일 투쟁과 이후 서구의 미술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발전시킨 경우이다. 셋째는 1945년 8월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조선족의 정체성과 특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발전한 단계이다.

이주 초기 조선족 미술

19세기 초 동북 3성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은 미술을 향유할 여력을 갖지 못했다. 주로 먹을 것을 찾아 이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예술적인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보다는 복식·수·뜨개질·음식 기구·가구·생산 도구 등 민간 전통 공예의 맥을 그대로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정도였다.

해방 이전

1920년대 유화가 간도에 들어왔고 당시 용정의 중학교 미술 교원들은 모두 유화를 가르쳤다. 1930년대에 이르러 서양 문화를 흡수하는 경향이 일어나고 많은 청년들이 출국하여 고학의 길을 걸었다. 이리하여 조선인 화단에 예술가로서의 창작 활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대표적인 화가로는 한낙연·신용검·석희만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 건국 후 17년의 미술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되면서 조선족의 미술은 첫 걸음을 띠기 시작했다. 특히, 1951년에 연변 사범 대학과 연변대학에서 미술 관련 전공 과목이 만들어 지면서 미술가들이 양성되기 시작했다.

두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연변의 각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미술 창작에 전념하였다. 이들은 연변일보사·연변 출판사 등에 중국 공산당과 관련한 작품을 발표하거나 각종 미술전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동식·연원갑·박기건·황애순·박일환·이동식·이수남·한극남·권도순·강장송 등이 이 시기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이들의 작품 중 대부분은 중국 공산당의 사업과 관련한 것들이어서 사실주의적인 경향이 강하였다.

1957년 10월 연변연변 예술 학교가 신설되면서 음악·무용·미술 등의 인재들이 양성되었다. 이로써 사회적 수요에 의한 미술 창작이 이루어졌고 조선족 미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민족의 전통 회화보다는 소련의 영향을 받은 서구 회화 중심의 유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조선족 미술계는 연변 중심의 유화가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는 1980년대에 이르러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문화 혁명기’의 조선족 미술

1950년대 본격적인 창작 대오의 형성과 창작 활동이 전국적 범위에서 비교적 앞서 가는 추세 였으며, 유학파를 통한 미술 교육은 서구 미술의 도입에 있어서 북경, 상해 등 일부 문화 중심 도시 외 기타 지역에 비해서는 훨씬 앞선 상태였다.

1941년 석희만이 ‘간도성 미술 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임무웅을 비롯한 후인들이 여기저기에서 수상의 쾌거를 이루면서 연변은 ‘유화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대외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1970년대 이후의 발전

1970년대 조선족 미술은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였다. 물론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10년간의 좌절이 미술 본연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하였으나, 정치적 공리성에 집중한 미술은 나라로부터 각별한 관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화에는 제약이 따랐을지라도, 리얼리즘에 입각한 표현력의 성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부일 선생의 「나루터」·「공지의 아침」, 조규일의 「파괴되지 않은 것이 없다」, 한주익의 「욱 중에서」 등의 작품들은 표현력에 있어서 그 필력이 완벽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성숙도를 보였으며, 중국 조선족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중국 조선족 회화 미술은 1980년대에 이르러 최고 흥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창작자 수가 방대해졌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연변 지역 총 인구는 200만에 못 미치는 수준이고 연길시 인구는 20만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 되는데, 미술 협회의 창작 인원은 수백 명에 달했다.

이부일의 「오래오래 앉으세요」, 장홍을의 「기쁨 싣고 노래 싣고」, 정동수의 「만년」, 김철봉의 「날 밝기 전」 등의 작품들은 전국 및 성급 전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미술이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이 확실하게 갖추어지고 회화 작품으로서의 그 예술적 표현력에 있어서도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이는 중국 조선족 회화 미술이 수 십 년간의 발전을 통해 토착화를 실현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서 연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 조선족 화단에는 새로운 유학풍이 일게 된다. 국내 일급 미대에 연수를 가는 것은 물론 한국일본, 미국 등 외국 유학이 하나의 풍토를 이룬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인데, 주로 한국 유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풍조는 연변 미술의 새로운 모습을 조성했다. 10년 동안 연변 미술은 다양화를 추구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 임무웅, 『중국 조선 민족 미술사』(시각과 언어, 1993)
  • 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예술사 (중국 조선 민족 문화사 대계; 3)』서울대 출판부, 1994
  • 이철호, 「중국 조선족 회화 미술의 전통에 대한 논의」(『동양 예술』9, 한국 동양 예술 학회, 2004)
  • 목수현, 「경계에 선 정체성-개혁개방 이전과 이후의 중국 조선족 미술」(『한국 근현대 미술 사학』 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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