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방 무용

한자 妓房 舞踊
중문 妓房舞踊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정의

일제 강점기에 중국 동북 지역의 조선족 사회에서 기방의 기녀들이 추었던 춤.

개설

기방 무용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존폐 위기를 겪고 이후 전문적 예술 집단인 기생 조합이 창설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기생 조합은 일본식 명칭인 권번으로 대체되면서 기생과 창기가 혼용되어 인식되었다.

중국에서도 일본의 문화 침투와 함께 1930년대 이후 예기관(藝妓館)들이 속속 나타났다. 이때 상당수의 조선인 기생들도 중국 동북 지역에 들어오게 되면서 기방 무용이 전수되었던 것이다.

공연 상황

일제 강점기 예기 조합을 통해 여러 종류의 연주가 기획되었고, 그 대표적으로 다동 조합, 광교 조합의 설립을 들 수 있다. 1914년 기생 조합이 권번(券番)으로 명칭이 바뀌면서부터 궁중 무용 전반을 다시 상연할 수 있었고, 민속 무용은 무대 무용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권번에서 기방 무용이 점차 체계를 이루는 과정에서 특히 많이 애용되는 레파토리인 「검무」나 입춤, 「살풀이춤」 등의 움직임 기법이 체계를 이루었다.

내용

1920년경까지 기생 조합 연주회의 공연은 대체로 춤과 노래, 악기 연주, 연극 한 막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춤으로는 항장무, 선유락, 가인전목단, 장생보연지무, 무고, 「승무」, 사자무 등 전래해온 춤이 대부분이었지만 문명 축하무, 서양춤, 나비춤 등 새로운 춤도 등장하였다.

1919년 말 경성에 한성 권번, 한남 권번, 대정 권번, 대동 권번, 경화 권번 등 다섯 권번이 있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러나 창기들의 조합이었던 신채 조합이 기생 권번으로 허가가 나 경화 권번이라는 이름을 내걸게 된 1916년 이래 창기와 기생의 구별이 모호해졌으며 기예의 내용이나 수준도 평준화 되어 갔다. 특히 극장 무대가 등장함으로 해서 무대에 맞는 새로운 춤의 형식과 소재의 다양성이 요구되었고,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상당수의 민속무가 창작되거나 변형되었다.

기방춤의 특징은 발레처럼 동작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쪼개는 식의 동작을 분리, 체계화하는 것이 아니다. 춤추는 사람의 개성과 함께 스타일이 만들어 지면서 체계화되는 것이다. 춤추는 사람의 몸과 마음, 동작 전체가 하나 되는 사고 방식이 우선 되어야 기방춤의 기법과 매력을 찾을 수 있다.

기방 무용은 전라도 지방을 대표하는 이매방의 작품 「광주 검무」, 「살풀이춤」, 입춤과 경상도 지방을 대표하는 김수악의 작품 「진주 검무」, 「논개 살풀이춤」, 「교방 굿거리 춤」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 최봉성, 『중국 조선족 무용사』(현대 미학사, 1996)
  • 성기숙, 『한국 전통춤 연구』(현대 미학사, 1999)
  • 한효림,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본 기방 무용」(『민족 무용』9, 2006)
  • 이미영, 「기방 무용의 특성연구」(『무용 예술학 연구』26,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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