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통화현 속성 군관 학교

한자 通化縣 速成 軍官 學校
중문 通化县速成军官学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길림성 통화시 통화현 강전자진 삼도하골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조선인 군관 학교
설립자 조선 혁명군
개교 시기/일시 1932년 5월
폐교 시기/일시 1932년 10월
최초 설립지 길림성 통화현 강전자 삼도하골
정의

길림성 통화현 강전자에서 1932년 5월에 설립되었던 조선인 군관 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통화현 속성 군관 학교는 1931년 9월 만주 사변 후 남만주 일대에서 일제와 싸우던 조선 혁명군(朝鮮革命軍)의 병력을 충원하기 위한 병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통화현 속성 군관 학교는 1931년 9월 만주 사변 이후 남만 일대에서 일제와 싸우던 조선 혁명군의 병력 충원을 위해 길림성(吉林省) 통화현(通化縣) 강전자(江甸子) 삼도하골 어구에 설립되었다.

군관 학교의 학생들은 주로 농촌 청년들이었다. 재정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를 설립하였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1932년 봄, 각지에서 3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인근 서강 소학교와 농민들의 집에 기거 하거나 한족 상인에게서 허름한 집을 사서 교사(校舍)와 기숙사로 삼는 등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마침내 1932년 5월 중순에 정식으로 개학식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학교장은 총사령관인 양세봉(梁世奉)이 겸임하였다. 교감은 윤일파(尹一波), 교육장은 윤동훈(尹東勳), 교관에 장신국(張信國), 홍익선(洪益善), 임필순(任弼淳)이었다. 제1기 학생은 모두 300명이었는데 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제1기 학생은 시험을 치지 않고 18~22세의 청년들로 신체 건강하면 입학이 가능했다.

1932년 8월에 제2기 학생을 모집하였는데 이때부터는 시험을 쳐서 입학 여부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제2기 학생들이 제대로 학습에 투입되기도 전에 일본인들에 의해 이 군관 학교의 존재가 발각되었고 일제는 무력을 동원하면서까지 학교의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 결과 학교는 1932년 10월 해산하게 되었다. 양성된 학생들 중 일부는 조선 혁명군에 참군했고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교육 활동

통화현 속성 군관 학교는 학제를 6개월로 정하였다. 교수 내용은 주로 문화 학습과 군사 훈련 두 가지로 나누었다. 문화 학습 내용에는 한글, 산술, 군사 상식, 창가 등이 포함되었고 군사 훈련에는 대렬, 무기 분해, 격검, 지형지물, 고지 쟁탈 등이 포함되었다.

당시 교과서는 학교에서 발급한 등사본 『언문』 한 권 뿐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습은 오로지 기억력에 의거해야 했다. 통화현 속성 군관 학교는 비록 짧은 반년이란 시간 밖에 유지하지 못했지만 매우 긴 여운을 남겨 주었다.

참고문헌
  • 김경식,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 상(문음사, 2004)
  • 중국 조선족 교육사 편찬 위원회, 『중국 조선족 교육사』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1
  • 박금해, 『일제의 동북 조선족 식민주의 교육 정책』(연변대학출판사, 1991)
  • 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교육사』민족 출판사, 1997
  • 허청선, 강영덕, 『중국 조선 민족 교육 사료집』2(연변교육출판사, 2003)
  • 허청선·강영덕, 『중국 조선족 교육사』(연변교육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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