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자 항일 유격 근거지

한자 車場子 抗日 遊擊 根據地
중문 东場子抗日遊击根据地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서성진 화안촌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35년 항일 유격대가 있던 동만(東滿)[현재 화룡시(和龍市) 서성진(西城鎭) 화안촌(和安村)]의 항일 유격 근거지.

개설

1934년 이후 일제의 항일 유격대에 대한 토벌이 강화되어 동만 지구의 여러 항일 유격 근거지가 파괴되었다. 이에 동북 인민 혁명군은 새로운 유격 근거지를 개척하였다. 1935년 1월 연길현(延吉縣), 화룡현, 안도현(安圖縣)의 항일 군민 1,000여 명이 당시 안도현 차장자(車場子)에 집결하여 차장자 항일 유격 근거지를 창설하였던 것이다.

변천

차장자는 당시 안도현 소속이었다. 화룡과 안도현의 접경지에 있다고 하여 ‘화안(和安)’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이곳에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유숙하였던 마차점이 있었기 때문에 차장자(처창즈[車場子])로 불렸다. 1940년 일본인 무장 개척단이 들어온 후 개척단의 책임자인 기미다[木興]가 자신의 이름으로 지명을 고쳤다.

해방 후 계속 목란둔(木蘭屯)으로 불리다가 1974년 화룡현에 귀속되어 지금의 화안촌으로 고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안도 차장자로 불린다. 차장자 항일 유격 근거지는 일제의 토벌을 피해 1935년 10월 안도현 내두산(奶頭山)으로 옮겼다.

위치

화룡시 서성진 화안촌에 있다. 주요한 유적지들은 화안촌을 지나 옛 철길이 놓였던 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가서 산 하나를 지나 다시 동쪽으로 철길 자리를 따라 가면 근거지 푯말이 보인다. 이곳에서 좀 더 가면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는데 여기가 바로 차장자 항일 유격 근거지가 시작되는 곳이다.

당시 동북 인민 혁명군 제2군 독립사 사부와 제1단, 제2단은 동남차 골안의 묘령 북쪽 기슭에 있었고, 연길현 팔구(八區)·옹구(翁區) 정부 등은 그 서쪽에 있었다. 또 서남차의 고동하자류 양안 즉 지금의 동골과 화안 금광 부근에는 병기 공장, 피복 공장, 병원 등이 있었다.

현황

현재 차장자 항일 유격 근거지연변의 중요한 홍색 관광지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차장자 항일 유격 근거지는 존재했던 시기가 비록 짧았지만 동만에서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근거지로, 연변의 항일 유격 투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2)
  • 「처장즈, 라자구 항일 유격 근거지 창설」(『연변 일보』, 200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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