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은행 대련 지점

한자 朝鮮 銀行 大連 支店
중문 朝鮮银行大连支店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22년 일제가 조선 및 대륙 경제의 수탈을 목적으로 설립한 조선 은행의 대련(大連) 지점 건물.

개설

1909년 10월 설립된 한국 은행이 1911년 8월 「조선 은행법」 제정 공포에 따라 조선 은행으로 개칭되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1,000만 원이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의 경기를 타고 1918년에는 자본금이 4,000만원으로, 1920년에는 8,000만원으로 급격히 팽창하면서 만주와 중국 요지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1917년 11월 조선 은행권이 만주의 일본 지배 지역에서도 통용되기 시작하자 조선 은행은 만주에서도 중앙 은행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고 그 세력 범위가 확대되자 이 은행도 더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여 일제의 침략을 뒷받침해 주었다.

건립 경위

1911년 「조선 은행법」 제정에 따라 종래 한국 은행이 조선 총독부 산하 조선 은행으로 재출범 하였다. 이후 일제의 대륙 진출이 본격화되고 이를 뒷받침할 금융 기관으로 조선 은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만주와 중국 등지에서 은행 영업이 확대되고 지점 개설이 증가하였다. 그 일환으로 1922년 대련에도 조선 은행 지점을 설립하게 되었다.

위치

대련시중산 광장 현 공상 은행 대련 분행 중산 지행 건물이다.

현황

조선 은행은 창립 당시에는 경성부에 본점을 두고 조선에 7개의 점포를 둔 자본금 1,000만 원의 은행에 불과했으나, 영업을 만주·일본·시베리아·중국에까지 확장함으로써 1920년에는 조선에 10개, 만주에 17개, 일본에 4개, 시베리아에 3개의 점포와 1,914명의 직원을 둔 자본금 8,000만 원의 은행으로 성장했다.

이후 1936년 만주 흥업 은행에 20개 점포를 양도 했음에도 1944년 말 현재 조선에 17개, 만주에 4개, 일본에 8개, 중국에 39개의 점포를 둘 만큼 일제 강점기 말까지 규모를 유지하였다.

1922년 설립된 조선 은행 대련 지점은 이후 관동 은행으로 바뀌었다가 현재 공상 은행 대련 분행 중산 지행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은행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 기관으로 대륙 침략이 본격화 되면서 세력 범위가 확대되자 일본 금융의 대륙 진출에 첨병 역할을 수행하였다. 현재 근대 건축물로서 대련시 중점 보호 건축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 정태헌, 『문답으로 읽은 20세기 한국 경제사』(역사 비평사, 2010)
  • 곽철장·관첩 등, 『일본의 대련 식민통치 40년사 1.2.3』(선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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