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혁명 열사 능원

한자 延邊 革命 烈士 陵園
중문 延边革命烈士陵园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가 설립한 혁명 열사 기념 기지
양식 원림식 능원
면적 원내 면적 5만 ㎡|부지 면적 6165㎡
소유자 중화인민공화국
관리자 연길시 민정국에서 관리함
문물|보호단위등급 1995년 국무원으로부터 “전국 중점 기념 건축물 보호 단위[全国重点纪念建筑物保护单位]”로 명명 됨
조성|건립 시기/일시 1992년 9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5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1년 6월
현 소재지 길림성 연길시 연집가 8호
정의

1992년 길림성(吉林省)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정부가 항일 열사의 정신을 기리고 애국과 민족 단결 등을 도모하기 위해 건립한 능원.

개설

연변은 항일 전쟁 시기에는 동만 항일 유격구였으며 해방 전쟁 시기에는 믿음직한 후방이었고 조선 전쟁 시기에도 중요한 기지였다. 항일 전쟁, 혁명 전쟁 연대는 물론이고 새 중국이 성립된 후에도 수많은 열사들이 배출되었다. 그들의 혁명 정신을 기리고 기념하면서 애국주의 교양, 민족 단결 교양을 진행하는 데 취지를 두고 1964년에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일찍 항일 전쟁이 승리한 후, 저명한 항일 명장 주보중은 연변 항일 열사 기념비를 세우고자 금·은을 모았다. 그러나 해방 전쟁 연대에 진입하면서 성사되지 못하였다. 1964년 국무원을 비준을 거쳐 250만원을 투자하여 연변 항일 기념비를 세우기 시작, 문화 혁명으로 인하여 정지되었다가 1992년 당과 국가의 배려 하에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위치

연변 혁명 열사 능원연길시 서북쪽, 연집하의 서쪽에 위치한 인민 공원 안의 서산에 건설되었다.

형태

1992년 4월 4일 국가 주석 강택민은 연변 혁명 열사 기념비에 “혁명 선열들은 영생 불멸하리”라고 제자를 써 주었고 송임궁은 “연변 혁명 열사 능원”이라는 원명을 써 주었다. 원내는 열사 패청사, 열사 기념비, 기념관, 골회당, 열사묘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규모가 웅대하고 형태가 장엄하면서도 민족 특색을 충분하게 표현하였다.

현황

연변 혁명 열사 능원에는 역사 문물과 자료가 대량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항일 전쟁”, “해방 전쟁”, “항미 원조”,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 시기” 의 4개 시기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연변에는 혁명 열사가 총 1만 6,300여 명에 달하는데 그 중 조선족이 91%를 차지한다. 1995년 국무원으로부터 “전국 중점 기념 건축물 보호 단위(全國重點紀念建築物保護單位)”로 명명되었으며 국가 민정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연길시로 부터 “애국주의 교양 기지(愛國主義敎養基地)”로 정해지고 1999년 9월 길림성 당위 선전부, 공청단 길림성위로부터 “길림성 청소년 교양 기지(吉林省 靑少年敎育基地)”로 정해지고 2001년 6월 중국 공산당 중앙 선전부로부터 “전국 애국주의 교양 시범 기지[全國愛國主義敎育示范基地]”로 명명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변 혁명 열사 능원은 현대화, 원림화 형식으로 조성한 것이다. 열사들을 기념하여 참배하고, 더불어 교양 행사를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지로서 연변 지역에서 물질문명, 정신문명, 정치문명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 「강택민 총서기 연변 혁명 열사 기념비에 제자 써 주어」(『연변 일보』, 1992. 4. 6)
  • 「연변 혁명 열사 능원 길림성 청소년 애국주의 교양 기지로」(『길림 신문』, 1999. 9. 1)
  • 「연변 혁명 열사 능원 중공 중앙 선전부로부터 “전국 애국주의 교양 시범 기지[全国爱国主义教育示范基地]”로 명명」(『연변 일보』, 200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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