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 관동부 사령부 구지 박물관

한자 旅順 關東府 司令部 舊址 博物館
중문 旅順关东府司令部旧址博物館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교육·문화/교육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요령성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박물관|식민지 수탈 기구
문화재지정번호 제7차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 1670번
문물|보호단위등급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
정의

요령성(遼寧省) 여순시(旅順市)에 있는 박물관으로 일제 강점기 관동군 사령부가 사용했던 건물.

개설

러·일 전쟁 후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관동군(關東軍)이라고 한다. 일본은 러시아와 맺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남만주(南滿州)에서의 특수 권익을 지키고, 남만주 철도 본선 및 안봉선(安奉線) 등을 수비하기 위한 군대 주둔권을 획득하였다. 이를 위해 관동 도독부를 설치하였다가 1919년 도독부를 폐지하고 일본 천황 직속의 관동군 사령부를 여순에 두어 관동주 및 만철 연선을 수비하게 하였다.

이후 관동군은 일본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서 전략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만주 사변이 일어나던 1931년 9월 18일 사령부를 봉천으로 옮겼고 또 1932년에 신경으로 다시 옮겨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는 동안 관동주 및 만주에 주둔하는 전 육군을 장악하였다.

건립 경위

일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요동 반도 남쪽에 관동주 조차지와 남만주 철도 부속지의 수비를 위해 만든 관동 도독부 육군부를 관동청으로 개편하고 이를 독립시켜 관동군으로 사령부를 만들었다.

위치

대련시 여순구 현 관동군 사령부 구지 박물관이다.

현황

여순 관동군 사령부 구지 박물관은 1906년부터 일제의 관동 도독부 육군부로 쓰이다가 1919년 4월 12일부터 본격적인 관동군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2층 규모의 박물관에는 관동군의 각종 장비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관동군 사령부 당시 사령부 사무실과 참모장 사무실을 재현하였다. 사령부 사무실은 1906년 8월부터 관동 도독부 육군부 장관 사무실로 쓰이다가 1919년 4월부터 관동군이 조직되면서 관동부 사령부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931년 9월 19일까지 총 9명의 관동군 사령관과 5명의 참모장이 거쳐 갔다.

1932년 한인 애국단원이던 유상근, 최흥식 등이 관동군 사령부를 폭파하려다 실패하고 여순 감옥에서 복역하다 순국하였다.

의의와 평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위한 억압 기구이자 대륙 침략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한 군사 조직이다. 현재 여순 관동부 사령부 구지 박물관은 제7차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 1670번으로 지정된 근현대 중요 사적 및 대표적 건축물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곽철장·관첩 저, 신태갑 역, 『일본의 대련 식민 통치 40년사』1, 2, 3(선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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