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밀산현 대종 학교

한자 密山縣 大宗 學校
중문 密山县大宗学校
분야 역사/근현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흑룡강성 계서시 밀산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대종교 계통 조선인 학교
설립자 대종교 종단
개교 시기/일시 1928년
폐교 시기/일시 1934년
최초 설립지 흑룡강성 계서시 밀산시
정의

흑룡강성 계서시 밀산현 당벽진에서 1928년에 세워졌던 대종교계 조선인 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밀산현 대종 학교는 조선인 자녀들을 교육시킴으로써 독립운동을 위해 후계자를 양성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대종 학교는 대종교에서 밀산현 당벽진에 세운 학교이다. 1909년 1월 15일 반일 활동가였던 나철 선생이 서울에서 단군교를 부활시켰다. 나철은 일제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단군교를 대종교라 개칭하였다.

1914년에 대종교는 본사를 서울에서 북간도 화룡현 용성향 청호촌으로 옮겼다. 하지만 일제의 지속적인 추적으로 다시 1920년 ‘경신년 대토벌’ 직전에 본사를 청호촌에서 흑룡강성 목단강 지역의 밀산현 당벽진으로 옮겼다. 1921년 연초부터 당벽진에 서당을 꾸려 인근 조선인 자녀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나, 1922년에 본사가 또 영안현 남관으로 옮겨갔다. 결국 1년간 꾸려졌던 개량 서숙이 문을 닫게 되었다.

1928년에 대종교 본사가 다시 밀산현 당벽진에 옮겨와 개량 서숙을 다시 열게 되면서 비로소 대종 학교가 설립되었다. 밀산현 대종 학교는 초가집을 교실로 삼고 학생 40여 명을 모집하여 가르쳤다. 교원은 대종교 제3세 교주 윤세복 뿐이어서 그가 교장이자 교원이었다.

대종 학교의 교과목은 한글·시사·역사·산수·체육 등이었다. 학제는 4년이었고 40여 명 학생을 4개 학년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을 하였다. 두 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였기 때문에 총명한 학생들은 상급반의 공부도 함께 하여 학년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었다. 대종 학교는 1934년 봄에 본사가 다시 당벽진에서 영안현 동경성 발해진으로 옮겨가 교주인 윤세복이 떠나가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

교육 활동

밀산현 대종 학교는 학생들에게서 월사금을 받지 않았다. 학교 당국은 학교 운영비를 자체로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 몇 만㎡가 되는 학전(學田)을 일구고 그 외 꿀벌을 40여 통을 쳤으며 과수도 재배하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한 후계자 양성 사업에 정력을 쏟아 부은 윤세복은 손수 교가를 지어 가르치기도 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교가는 1절의 일부만 전해지고 있다.

교가

등뒤에는 400장 되는 봉밀산

앞에는 둘레가 800리인 흥개호

이 마당에서

뛰노는 배달 소년들

억 천만년 무궁하리... 우리...

참고문헌
  • 김경식, 『재중한민족교육전개사』 상(문음사, 2004)
  • 중국 조선족 교육사 편찬 위원회, 『중국 조선족 교육사』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1
  • 박금해, 『일제의 동북 조선족 식민주의 교육 정책』(연변대학출판사, 1991)
  • 북경 대학 조선 문화 연구소, 『교육사』민족 출판사, 1997
  • 허청선, 강영덕, 『중국 조선 민족 교육 사료집』2(연변교육출판사, 2003)
  • 허청선·강영덕, 『중국 조선족 교육사』(연변교육출판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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