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 삼종사 묘비

한자 大倧敎 三宗師 墓碑
중문 大倧敎三宗師墓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항일 운동 기념비
양식 봉분과 묘비
관련인물 나철, 서일, 김교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0
현 소재지 화룡현 용성향 청호촌
정의

길림성(吉林省) 화룡현(和龍縣)에 있는 대종교(大倧敎) 삼종사(三宗師)의 기념 묘역.

개설

대종교 삼종사 묘비백두산 북쪽 지역으로 일제가 1915년 대종교를 ‘국조(國祖) 단군(檀君)을 신봉하는 항일 집단’으로 규정, 포교를 중단시킴에 따라 옮겨간 대종교 망명의 본거지에 위치하고 있다.

대종교는 당시 ‘청파호(靑波湖)’라 불리던 이곳에 총본부를 설치하고 각지에 지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청파호는 조선인이 들어와 개척하여 마을을 이룬 곳이다. 묘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독립군이 야산에 토굴을 파서 사용하던 무기 창고 2개가 남아 있어서, 당시 항일 무장 운동의 기지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삼종사는 대종사(大宗師) 홍암(鴻巖)나철(羅喆)[1863~1916]과 종사(宗師)인 백포(白圃)서일(徐一)[1881~1921] 및 무원(茂園)김교헌(金敎獻)[1868~1923)을 말한다. 이들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항일 계몽 운동과 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청산리 전투의 선봉에서 활약하였다. 이곳에 거주하던 신도들도 대부분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위치

삼종사 묘역이 자리잡은 곳의 옛 주소는 화룡현 청파호였다. 현 주소는 길림성 화룡현 용성향(龍城鄕) 청호촌(淸湖村)으로 되어 있다.

형태

청호 종산의 작은 황토 구릉 위에 3위(位)의 무덤이 서쪽 화룡시 건너 청산리를 향하고 있다. 세 지사 묘비에는 한자로 ‘대종교’라 새겨져 있고, 나철의 비에는 한자로 ‘대종교 대종사’라고 새겨져 있다.

현재 묘지 옆에는 1991년 9월 1일 화룡시 인민 정부의 공포에 따라 화룡시 문화 유물 보호 단위로 세운 기념비가 있다. 중국 당국이 대종교의 항일 활동을 높이 평가하여 묘역을 조성하고 문물로 관리한 것이다. 이 기념비에는 ‘반일 지사[나철, 서일, 김교헌]’이라는 제목과 함께 삼종사가 화룡시를 중심으로 펼친 계몽 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한 안내문이 한글과 중국어로 앞뒤에 새겨져 있다. 그 전문(全文)은 다음과 같다.

“반일 지사 나철, 서일, 김교헌은 20세기 전반기에 동북 지구에서 한 때 화룡시 청파호를 기지로 반일 계몽 운동과 반일 교육 운동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민중의 반일 의식을 높이고 인민의 반일 사상 각오를 높이기 위하여 많은 일들을 하였으며 반일 무장 투쟁을 준비하고 전개함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일이 영도한 ‘북로 군정서’ 소속의 반일 무장 부대와 ‘국민회’ 소속의 반일 무장 부대가 1920년 10월 화룡 지구에서 협동 작전을 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청산리 전투’는 일본 침략군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반일 운동이 깊이 있게 전개되도록 힘있게 추동하였다.”

참고문헌
  • 강용권,『죽은 자의 숨결, 산자의 발길』하 (장산, 1996)
  • 국가 보훈처,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 조사 보고서(2000~2001)』(국가 보훈처, 2001)
  • 김철수, 『연변 항일 사적지 연구』(연변인민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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