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洪大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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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洪大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요령성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성격 | 학자(學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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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男) |
본관 | 남양(南陽) |
대표관직 | 영천 군수(榮川郡守) |
출생 시기/일시 | 1731년(영조 7) |
활동 시기/일시 | 1765년(영조 41) |
활동 시기/일시 | 1776년(정조 즉위년) |
활동 시기/일시 | 1777년(정조 1) |
활동 시기/일시 | 1779년(정조 3) |
몰년 시기/일시 | 1783년(정조 7) |
추모 시기/일시 | 1939년 |
출생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
부임|활동지 | 전라 북도 정읍 |
부임|활동지 | 경상 북도 영주시 |
묘소|단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
조선 후기 「연기(燕記)」라는 사행 기록을 남긴 북학파(北學派) 계열의 학자.
홍대용은 1758년(영조 34) 부친의 부임지인 전라도 나주로 내려가 나주의 향약(鄕約)과 권무 사목(勸武事目)에 대한 서문을 지었다. 1765년(영조 41)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파견된 작은 아버지 홍억(洪檍)의 수행 군관으로 연경에 갔다. 연경에서 엄성(嚴誠), 반정균(潘庭筠), 육비(陸飛) 등을 만나 필담 등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들과 필담 등으로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건정동회우록(乾淨衕會友錄)」을 엮었다.
또한 당시 일정 등을 기록한 「연기(燕記)」라는 사행 기록을 남겼다. 「연기」에는 심양을 거쳐 연경에 가는 동안 견문한 각종 일화를 기록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사헌부 감찰과 종친부 전부 등을 지냈고, 1777년(정조 1)에는 전라도의 태인 현감을 지냈다. 1779년(정조 3)에는 영천 군수(榮川郡守)를 역임하였다.
홍대용의 묘소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에 위치한다.
홍대용의 문집인 『담헌서』는 1939년 신조선사에서 활자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