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 석목성 지석묘

한자 海城 析木城 支石墓
중문 海城析木城石棚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석목진 고수석촌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지석묘
양식 탁자식 지석묘
크기 580cm[길이]|520cm[너비]|50cm[두께](상석)
문물|보호단위등급 중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
조성 시기/일시 고조선
발굴 조사 시기/일시 1896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2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60~1980년
문화재 지정 일시 1950년대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대
소재지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석목진 고수석촌 고수석산
정의

요령성(遼寧省) 안산시(鞍山市) 해성시(海城市) 석목진(析木鎭) 고수석촌(姑嫂石村)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

개설

해성 석목성 지석묘는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석목진 고수석촌 부근에 있는 고수석산 남사면 작은 봉우리 정상의 평탄한 대지에 1기[1호]가, 봉우리 정상 소재 지석묘에서 서쪽으로 350m 지점에 있는 구릉 자락의 미고지에 1기[2호]가 분포하고 있다. 요동 남부의 대표적인 지석묘문화인 쌍방 유형(雙房類型) 해성하(海城河)~관둔하(官屯河) 유역권의 대표적인 지석묘이다.

위치

해성 석목성 지석묘는 요령성 안산시 해성시 석목진 달도욕촌(達道峪村) 서북쪽 1㎞, 고수석촌 동남쪽 1㎞의 고수석산 남사면의 작은 봉우리 정상 평탄 대지[지표 높이 30m]에 1기[1호], 봉우리 정상 소재 지석묘의 서쪽 350m 구릉 자락의 미고지에 1기[2호]가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성 석목성 지석묘는 1896년 조거용장(鳥居龍藏)이 처음으로 지표 조사를 했다. 1930~1940년대 여순시 박물관 등 여러 기관과 연구자들이 지표 조사를 했다. 1952년 진명달(陳明達)이 실측 조사를 하였고, 1970~1980년대 해성현 문물 관리소(海城縣文物管理所), 요령성 문물 고고 연구소(遼寧省文物考古硏究所), 여순시 박물관(旅順市博物館) 등 여러 기관과 연구자들이 지표 및 측량 조사를 했다.

형태

해성 석목성 지석묘는 현지 주민들이 고수석산 남사면 봉우리 정상에 있는 것을 ‘고석(姑石)[1호]’, 구릉 자락 미고지에 있는 것을 ‘수석(嫂石)[2호]’이라고 별칭하고 있다. 산 이름 또한 이 2기의 지석묘 때문에 이와 같이 붙여지게 되었다.

1호 대형 탁자식 지석묘(卓子式支石墓)는 상석과 벽석 모두 물매질까지 되어 있을 정도로 치석이 잘 되어 있고 접합과 조립 상태도 치밀하다.

상석은 평면 근방형으로, 길이 5.8m, 너비 5.2m, 두께 0.5m이다. 묘실의 규모는 실내 기준 길이 2.2m, 너비 1.6m, 높이 2.24m이다. 동·서·북벽의 세 벽을 중심 지석으로 하였는데, 벽석의 조립 상태가 특이하게 북벽[막음돌]이 양 측벽 보다 밖으로 길게 빼어져 있는‘ㅠ’자형을 하고 있다. 묘문석[남단벽]은 묘실의 반 조금 넘는 지점까지만 막고 있어 외부에서 묘실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또한 묘문석 앞쪽 0.4m 지점에 길이 2.71m, 두께 0.1~0.15m, 높이 0.12m의 장조형석이 시설되어 있다.

2호 소형 탁자식 지석묘는 19세기 말 일본인 조거용장(鳥居龍藏)이 조사할 당시 이미 반쯤 쓰러져 있었는데, 1952년 진명달(陳明達)의 실측 조사에 따르면 잔존 벽석 1매의 크기는 길이 1.5m, 높이 1.35m, 두께 0.4m에 달하고, 규모는 소형이지만 2호 탁자식 지석묘 또한 벽석의 치석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출토 유물

해성 석목성 지석묘는 1952년 조사 당시 1호 탁자식 지석묘 주변에서 굵은 모래알이 섞여 있는 흑갈색과 홍갈색 토기편, 돌 도끼 등이 채집되었다.

현황

해성 석목성 지석묘 가운데 2호는 현재 잔존하고 있지 않다. 1호의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1호는 현재 중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해성 석목성 지석묘는 요동 남부의 대표적인 지석묘 문화인 쌍방 유형의 여러 소지역 가운데 해성하~관둔하 유역권을 대표하는 지석묘이다. 쌍방 유형 부도하(浮渡河)~복주하(復州河) 중상류역권의 개주시(盖州市)석붕산(石棚山) 지석묘 등과 함께 쌍방 유형의 대표적인 의례 기념물이기도 하다.

석목성 지석묘를 비롯한 쌍방 유형의 지석묘 유적을 고조선의 표지 유적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金貞培, 「中國 東北 地域의 支石墓 硏究」(『국사관논총』85, 국사 편찬 위원회, 1999)
  • 오강원, 「遼東 南部 부도하 유역권의 형성과 대형 지석묘군 출현의 사회 경제적 배경」(『考古學 探究』10, 考古學 探究會, 2011)
  • 이시욱,「1960년대 만주 활극 연구 : 액션 영화의 활극성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 예술 연구』(창간호), 한국 예술 종합 학교 한국 예술 연구소, 2010)
  • 오강원, 「靑銅器 文明 周邊 集團의 墓制와 社會遼東과 吉林 地域의 支石墓와 社會」(『호서 고고학』26, 호서 고고 학회, 2012)
  • 오강원, 「중국 동북 지역 지석묘의 상석 채석과 운반」(『고고 광장』10, 부산 고고학 연구회, 2012)
  • 陳明達, 「海城縣的巨石建築」(『文物』1953-10, 文物出版社,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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