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조선 청심환

한자 朝鮮 淸心丸
중문 朝鲜淸心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세기
정의

조선 후기 연행 사신이 심양(瀋陽)이나 산해관(山海關) 등을 방문했을 때 인기를 끌었던 조선 약재의 하나.

개설

조선 청심환은 열을 풀어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효능이 있다는 약재이다. 조선 후기 청나라에서는 조선에서 만들어진 청심환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였다. 홍대용(洪大容)은 연경에서 결의 형제를 맺은 항주의 선비 육비(陸飛)·엄성(嚴誠)·반정균(潘庭筠) 등과 나눈 필담을 모은 『항전척독(杭傳尺牘)』에서 청심환에 대해 “자못 기효가 있고 품질도 여러 등급이어서 가짜가 반이 넘는다. 그 진짜는 궁제(宮劑)에서만 나오는데 가장 쓸 만하다.”고 하면서 북경 사람들이 이 물건을 보배로 여긴다고 기록하고 있다.

1798년(정조 22)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서유문(徐有聞)은 『무오 연행록(戊午燕行錄)』에서 ‘청심환 가운데 오랜 얼음을 넣으니 바다 가운데에서 천년이 되어도 녹지 아니하는 얼음이라.’는 소문까지 돌아 청심환 하나에 3돈의 은을 주고 구입하되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도 얻으면 좋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심환에 대한 인기는 중국 내지뿐만이 아니었다. 연경으로 가는 길목인 산해관이나 심양 등지에서도 관원을 비롯해 승려 등이 청심환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서유문은 사행길에 들르던 요동의 많은 참에서 사람들이 청심환을 달라고 하여 매우 괴롭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에 사신 일행은 청심환을 준비해가서 청나라 관원에게 선물로 주거나 답례품으로 지급하기도 하였고, 박지원(朴趾源)은 청심환 한 알과 소주를 바꾸어서 마시기도 하였다.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의 칙사가 청심환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조달이 어려운 경우에 다른 약재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조엄(趙曮)은 칙사와의 경험담을 소개한 바 있다. 즉 청심환을 구할 수 없자 한 호조의 낭청이 판서에 제안하기를 “산삼(山蔘)을 넣은 우황 청심환(牛黃淸心丸)은 이미 귀한 것이요. 빠른 시일에 제조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니, 호조에 있는 오래 묵은 잡다한 환약(丸藥)을 모아서 금박(金箔)을 환약 가루에 타 표면에 입혀서 주면 됩니다.”라고 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는 칙사들의 많은 요구가 있음을 방증한다.

참고문헌
  • 『열하일기(熱河日記)』
  •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 홍대용(洪大容), 『담헌서(湛軒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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