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조선 사신 구타 사건

한자 朝鮮 使臣 毆打 事件
중문 朝鲜使臣殴打事件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이확(李廓)|나덕헌(羅德憲)
발생|시작 시기/일시 1636년(인조 14)
종결 시기/일시 1636년(인조 14)
발생|시작 장소 요령성
종결 장소 요령성
정의

1636년(인조 14) 조선의 사신으로 심양(瀋陽)에 파견된 나덕헌(羅德憲) 등을 청나라 군사들이 구타한 사건.

개설

조선 사신 구타 사건은 1636년(인조 14) 후금의 홍타이지가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황제(皇帝)에 즉위한 것을 기념하는 의식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때 조선에서 파견된 회답사(回答使)와 춘신사(春信使) 일행이 참석하였는데 하례를 거부하자 이들을 구타하였다.

역사적 배경

1636년(인조 14) 후금에서는 조선에 명나라와의 통교를 끊을 것 등을 요구하는 국서를 보냈다. 이에 조선에서는 회답사로 이확(李廓) 등을 보내는 한편, 같은 해에 나덕헌(羅德憲)을 춘신사로 심양에 파견하였다. 당시 후금의 홍타이지는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고 황제(皇帝)를 칭하며 즉위식을 거행했다.

경과

황제 즉위식이 거행되기 전부터 후금에서는 나덕헌 등이 머무는 숙소로 역관(譯官) 정명수(鄭命壽)를 보내 여러 가지 일에 대해 트집을 잡으면서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이에 나덕헌 등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관복을 찢고 사모를 밟아 뭉개뜨려 다시는 입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이에 후금의 군사들이 그들을 즉위식이 열리는 행사장에 강제로 끌고 갔으며, 그곳에서 사신들을 구타하였던 것이다. 자신들에게 굴복하도록 회유하고 협박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박지원(朴趾源)이 찬술한 이확의 신도비명에는, “장사들이 앞을 다투어 그 팔과 다리를 붙잡고 고개를 억누르고 꽁무니를 쳐들고 사지를 들어 땅에 엎어뜨리자, 공은 크게 호통치며 몸을 뒤쳐 바로 누워, 앞에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누운 채 발길로 그 얼굴을 차서 코가 깨져 피가 터지곤 하니, 이날 구경하던 자들은 깜짝 놀라고 혐오스러워 차마 보지를 못했다. 마침내 거꾸로 질질 끌어다 숙소에 가두었다.”라고 기록하였다.

결과

나덕헌 등이 온갖 구타와 회유에도 시종일관 하례를 거부하자, 청나라는 볼모를 요구하는 국서를 주어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덕헌 등이 내용을 알기 전에는 받을 수 없다고 받지 않자, 100여 명의 기병으로 통원보(通院堡)까지 압송하였는데, 기병의 포위가 풀리자 나덕헌은 통원보의 호인(胡人)에게 국서를 맡기고 귀국했다. 이 사실을 안 삼사(三司)와 조복양(趙復陽)을 중심으로 한 관학 유생들은 나덕헌이 황제 참칭(皇帝僭稱)의 국서를 받았다고 논핵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사신 구타 사건은 명·청 교체기에 청나라가 자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려는 과정에서 조선을 굴복시키기 위해 발생한 사건이다.

참고문헌
  • 『연암집(燕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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