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임경업

한자 林慶業
중문 林庆业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무신(武臣)
성별 남(男)
본관 평택(平澤)
대표관직 의주 부윤(義州 府尹)
출생 시기/일시 1594년(선조 27)
활동 시기/일시 1618년(광해군 10)
활동 시기/일시 1624년(인조 2)
활동 시기/일시 1626년(인조 4)
활동 시기/일시 1631년(인조 9)
활동 시기/일시 1633년(인조 11)
활동 시기/일시 1634년(인조 12)
몰년 시기/일시 1646년(인조 24)
추모 시기/일시 1677년(숙종 3)
부임|활동지 함경남도 삼수군
부임|활동지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외서면·별량면 일부와 보성군 벌교읍, 고흥군 동강면 일부 지역
부임|활동지 평안북도 정주
부임|활동지 평안북도 영변
부임|활동지 평안북도 의주
묘소|단소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 산 45-1
사당|배향지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 살미면(乷味面) 세성리(洗星里) 150번지
사당|배향지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 살미면(乷味面) 세성리(洗星里) 150번지
사당|배향지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385-1
정의

조선 중기 인조 대에 숭명 반청(崇明反淸)의 노선을 견지했던 무신.

개설

임경업[林慶業, 1594~1646]의 본관은 평택(平澤)이고, 자는 영백(英伯)이며 호는 고송(孤松)이다. 무과 출신이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명나라 공격을 위해 요청한 원병으로 파견되었는데, 이때 군사 정보를 명나라 측에 전달하였다. 이로 인해 청나라 심양(瀋陽)으로 압송되다 탈출하여 명나라로 망명하였다가 북경(北京)이 청나라에 의해 함락되며 체포되었다. 이후 조선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다가 장살(杖殺)되었다. 이 같은 생애로 인해 임경업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군담 소설(軍談小說)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기도 하였다.

가계

임경업의 할아버지는 임득윤(林得胤)이고, 아버지는 임황(林葟)이다. 어머니는 파평 윤씨윤흥지(尹興智)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이잠(李潛)의 딸이다.

활동 사항

임경업은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한 뒤 삼수의 소농보권관(小農堡權管)을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정충신(鄭忠信)의 휘하에서 안현 전투(鞍峴戰鬪) 때 공을 세워 진무 원종 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1626년(인조 4) 낙안 군수에 제수되었고, 다음 해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났을 때 병사 신경인(申景禋)의 우영장(右營將)으로 참전, 강화도에 들어갔으나 이미 화의(和議)가 이루어져 회군하였다.

1631년(인조 9) 검산 산성 방어사를 비롯해 정주 목사(定州牧使)를 지냈고, 1633년(인조 11)에 영변 부사 겸 청남 방어사와 청북 방어사를 지냈으며, 1634년(인조 12)에는 의주 부윤에 제수되었다. 의주 부윤 당시에는 백마 산성과 의주 산성의 방비 강화를 위해 주력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당시 청나라 군사는 임경업이 지키고 있는 백마 산성을 피해 서울로 진격하였다. 난이 종식된 뒤 철군하는 청나라 군사의 배후를 공격해 전과를 올렸다.

병자호란 이후 안주 목사와 의주 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조선측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임경업과 유림(柳琳) 등이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다. 그러나 임경업은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명나라 군에게 군사 정보를 알려주는 등 청나라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다.

1641년(인조 19) 조·청 연합군의 금주위(錦州衛) 공격으로 명나라 장수 홍승주(洪承疇)가 생포되었을 때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국 임경업은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압송되던 중 금교역(金郊驛)에서 탈출하여 삭발한 뒤 강원도의 양구(楊口)에 들어가서 생활하다가 1643년(인조 21) 심복 이원약(李元約)과 함께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북경이 청나라에 함락된 뒤 1645년(인조 23) 북경으로 압송되었다가 1646년(인조 24) 조선으로 송환되었으며, 당시 진행되던 심기원(沈器遠) 모반 옥사에 연루되어 조사받다가 장살(杖殺)되었다.

학문과 저술

임경업이 남긴 문장으로는 대장부의 기개를 읊은 시인 「검명(劍銘)」을 비롯해 1634년(인조 12) 인조에게 올린 상소, 병자호란 당시 평안 병사 유림에게 보낸 편지가 전한다.

묘소

임경업의 묘소는 충청북도 충주시 풍동 산 45-1에 위치하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임경업의 관직은 1677년(숙종 3)에 회복되었다. 충렬사(忠烈祠)를 건립해 배향했다. 1727년(영조 3) 충렬사에 사액을 내리고, 1738년(영조 14) 임경업의 후손을 관직에 등용시켰다.

1791년(정조 11) 정조가 서문을 써서 『임경업 실기(林慶業實紀)』를 편찬하게 하였고, 충렬사에 어제달천충렬사비(御製達川忠烈祠碑)를 건립하고 정조가 비문을 지었다. 송시열(宋時烈)임경업의 행장을 읽고 감격하여 「임장군경업전(林將軍慶業傳)」을 지었고, 이선(李選)이 「임장군전(林將軍傳)」, 권두인(權斗寅)이 「임경업전(林慶業傳)」, 신정하(申靖夏)가 행장(行狀)을, 황경원(黃景源)이 신도비명(神道碑銘)을 찬술하였다.

임경업이 배향된 사당은 충렬사와 충주의 사우(祠宇), 의주의 현충사(顯忠祠), 선천의 충민사(忠愍祠), 순천의 충민사(忠愍祠), 인천의 충민사(忠愍祠) 등이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송시열(宋時烈), 「임장군경업전(林將軍慶業傳)」(『송자대전(宋子大全)』 권213)
  • 이선(李選), 「임장군전(林將軍傳)」,(『지호집(芝湖集)』 권13)
  • 권두인(權斗寅), 「임경업전(林慶業傳)」,(『하당집(荷塘集)』 권4)
  • 황경원(黃景源), 「명총병관조선국정헌대부, 평안도병마절도사충민림공신도비명(明總兵官朝鮮國正憲大夫,平安道兵馬節度使忠愍林公神道碑銘)」(『강한집(江漢集)』 권13)
  • 디지털 충주 문화 대전(http://chungju.grandcultu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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