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자 유형

한자 二道河子 類型
중문 二道河子类型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요양시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정의

요령성 요양현이도하자 석관묘군을 표지로 하는 청동기 시대 태자하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요동 북부 지역에 있던 고고학 문화.

개설

이도하자 유형(二道河子類型)은 후기 청동기 시대 태자하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요동 북부 지역의 청동기 문화이다. 태자하 중상류역의 전기 청동기 문화인 마성자 문화(馬城子文化) 말기를 직접적인 선행 문화로 하고 있다. 길림성 중부 지역의 같은 시기 청동기 문화인 서단산 문화(西團山文化) 또한 마성자 문화 말기의 유물 요소가 길림성 중부 지역으로 북상하여 정착하여 형성된 까닭에 묘제와 일부 유물에서 서단산 문화와 유사성이 있다. 기원전 4세기 태자하 중상류역 본계(本溪) 일대의 초기 철기 문화인 유가초 유형(劉家哨類型)이 직접적인 후계 문화에 속한다.

주요 유적과 유물

이도하자 유형의 주요 유적으로는 무순시(撫順市) 대갑방(大甲邦) 석관묘, 무순현(撫順縣) 대화방(大伙房)·축가구(祝家溝) 석관묘, 요양현 이도하자·첨수(甛水)·하평주(下平洲) 석관묘, 본계만족자치현(本溪滿族自治縣) 노성(老城) 석관묘, 신빈만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 색가(色家) 석관묘, 청원만족자치현(淸原滿族自治縣) 문검(門臉)·이가보(李家堡) 석관묘, 서풍현(西豊縣)성신(誠信)·동구(東溝)·부풍(阜豊)·충후(忠厚) 석관묘 등이 있다. 중심적인 유물 요소로는 미송리 형호(美松里型壺)·노성형호(老城型壺)·대화방형관(大伙房型罐)·양이부발(兩耳附鉢)·이도하자형[B형] 비파형 동검·이도하자식[BIId식] 선형 동부·이가보형[B형] 비파형 동모·석관묘 등이 있다.

분포

이도하자 유형은 대체로 현재의 행정 구역을 기준으로 할 때, 본계시와 본계만족 자치현, 신빈만족자치현, 청원만족자치현, 서풍현, 등탑시(燈塔市) 접관청(接官廳) 석관묘, 요양시와 요양현, 심양시(沈陽市), 무순시와 무순현, 철령시(鐵嶺市), 개원현(開原縣), 창도시(昌圖市) 등에 분포하고 있었다.

대체로 요하(遼河)를 경계로 의무려산(醫巫閭山)과 요하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창무현(彰武縣)·신민시(新民市)·흑산현(黑山縣) 등의 동북평원 지역과, 노독정자산[老禿頂山, 해발 1,325m]으로부터 흑산(黑山)[해발 1,181m]에 이르는 분수령을 경계로 환인만족자치현(桓仁滿族自治縣)봉성시(鳳城市) 등 요동 동부 지역의 대이수구 유형(大梨樹溝類型)과, 천산(千山)[해발 708m]으로부터 흑산에 이르는 분수령을 경계로 수암만족자치현(岫岩滿族自治縣)·개주시(盖州市)·와방점시(瓦房店市) 등의 천산 산맥(千山山脈) 남부의 쌍방 유형(雙房類型) 등 지석묘 문화와 이웃하고 있었다.

주요 하천으로는 요하 본류로 유입되는 태자하·혼하(渾河)·범하(泛河)·시하(柴河)·청하(淸河)·구하(寇河)와 그 지류인 사하(沙河)·탕하(湯河)·소자하(蘇子河) 등이 있다. 이도하자 유형의 기술적 중심 지역은 요양현 일대이다. 그러나 기원전 6~4세기 심양시 일대에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의 중심이 형성되면서 천산 산맥 서측 지역과 요양현 일대가 정가와자 유형의 분포 권역으로 변동되었고, 이도하자 유형의 중심지는 태자하 중상류역의 본계 시현 일대로 이동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기원전 4~3세기 본계 시현 일대에 이도하자 유형의 직계 후행 문화인 유가초 유형(劉家哨類型)이 형성된다.

연대

이도하자 유형은 시대성이 분명한 공반 유물과 유물 조합 등을 근거로 노성 단계[기원전 10~9세기], 이도하자 단계[기원전 8~7세기], 양가 단계[기원전 6~5세기]의 3개 단계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도하자 유형은 요동 북부의 후기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이다. 이도하자 유형은 요동 북부의 전기 청동기 문화인 마성자 문화의 직접적 후계 문화이자 태자하 중상류역의 초기 철기 문화인 유가초 유형의 직접적인 선행 문화에 속한다.

이도하자 유형의 표지 유물인 이도하자형 비파형 동검 등은 기원전 8~7세기 요동 전역은 물론 길림성 중부와 서북한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 지역의 청동기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송리 형호 또한 요동 남부 지역과 서북한 지역 토착 문화의 동일 기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예맥 청동기 문화의 전개 과정에서 이도하자 유형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유가초 유형이 형성되어 있던 태자하 중상류역은 『삼국사기』 등에 고구려 건국 후 양맥(梁貊)이 활동하던 곳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마성자 문화~이도하자 유형~유가초 유형으로 이어지는 요동 북부의 동일 문화 계통을 예맥족 가운데 맥계의 족속에 의해 남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정배, 『한국 민족 문화의 기원』(고려 대학교 출판부, 1973)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오강원, 「비파형 동검을 통하여 본 기원전 8~7세기 요동 북부 지역 청동기 제작 기술과 지역간 기술 교류」(『호남 고고 학보』44, 호남 고고 학회, 2013)
  • 오강원, 「遼寧 地域의 靑銅器·初期 鐵器 時代 複合 社會의 形成과 社會 變動」(『先史와 古代』 38, 한국 고대 학회, 2013)
  • 오강원, 「청동기~철기시대 요령·서북한 지역 물질 문화의 전개와 고조선」(『동양학』53,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2013)
  • 오강원, 「遼東~西北韓 地域 美松里 型壺의 地域 文化와 社會 文化的 含意」(『한국 상고사 학보』85, 한국 상고사 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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