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유득공

한자 柳得恭
중문 柳得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학자
성별 남(男)
본관 문화(文化)
대표관직 풍천 부사(豊川 府使)
출생 시기/일시 1748년(영조 24)
활동 시기/일시 1774년(영조 50)
활동 시기/일시 1779년(정조 3)
활동 시기/일시 1783년(정조 7)
활동 시기/일시 1784년(정조 8)
활동 시기/일시 1788년(정조 12)
활동 시기/일시 1794년(정조 18)
활동 시기/일시 1800년(정조 24)
몰년 시기/일시 1807년(순조 7)
출생지 한성
거주|이주지 경기도 남양 백곡
거주|이주지 서울 종로구 경운동
외가|처가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
부임|활동지 충청남도 홍성시
부임|활동지 경기도 포천시
부임|활동지 경기도 양평군
부임|활동지 경기도 가평군
부임|활동지 황해도 송화
묘소|단소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동
정의

조선 후기 북방 영토에 대한 관심과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발해고(渤海考)』의 저자.

개설

유득공(柳得恭)[1749~1807]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자는 혜보(惠甫)·혜풍(惠風)이고, 호는 영재(泠齋)·영암(泠庵)·고운당(古芸堂)·고운 거사(古芸居士)·가상루(歌商樓)·은휘당(恩暉堂) 등이다.

1784년(정조 8) 『발해고』를 지어 북방 영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한편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할 것을 주장하였다. 규장각(奎章閣) 검서관(檢書官) 출신의 4검서관 중 한 명이다. 4검서관은 유득공을 비롯해 이덕무(李德懋)·서이수(徐理修)·박제가(朴齊家)를 지칭한다.

가계

유득공의 할아버지는 유한상(柳漢相), 아버지는 유춘(柳瑃), 어머니는 홍이석(洪以錫)의 딸이다. 신분으로 보면 서자이다.

활동 사항

유득공은 1774년(영조 50) 사마시에 합격했고, 1779년(정조 3)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이후 1783년(정조 7)에 금정도 찰방을 거쳐 1784년(정조 8)에 포천 현감, 1788년(정조 13)에 양근 군수, 1794년(정조 18) 가평 군수, 1800년(정조 24) 풍천 부사를 지냈다.

1776년(영조 52)에 숙부 유련(柳璉)이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및 유득공의 시문을 엮은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을 가지고 가서 청나라 문인들에게 서문과 시평(詩評)을 받아왔다. 이후 1790년(정조 14)에는 진하사(進賀使)를 수행해 연경(燕京)을 다녀왔고, 1801년(순조 1)에는 주자서(朱子書)의 선본을 구해 오라는 명을 받고 사은사를 따라 연경에 다녀왔다.

1784년 포천 현감에 재직할 때 『발해고』를 찬술하였다. 『발해고』에서 북방 영토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였다. 책의 서문에서 발해고구려의 계승자임을 강조하고 당시 신라와 발해가 남북으로 병존하였음을 강조하였으며, 신라와 발해가 망한 후 고려도 마땅히 신라와 발해의 역사를 편찬해야 했다고 하였다. 나아가 만주 고토(故土)에 대한 회복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유득공의 저술은 『발해고』 이외에 단군의 왕검성(王儉城)에서 시작하여 고려의 송도(松都)에 이르기까지 21개의 왕도를 43수로 읊은 『이십일도 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서울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京都雜志)』를 비롯해 『앙엽기(盎葉記)』·『사군지(四郡志)』 등이 있다. 문집으로는 『영재집(泠齋集)』이 있다.

묘소

유득공은 사후 경기도 양주군 시둔면 송산리(松山里)[현재의 의정부시 송산동]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 송기호, 「통일 신라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로」(『역사 비평』74, 역사 비평사, 2002)
  • 김종복,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발해사 연구 성과」(『한국 고대사 연구』62, 한국 고대사 학회, 2011)
  • 한국 고전 번역원(http://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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