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산 산성[요원시]

한자 城子山 山城
중문 城子山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길림성 요원시 용산구 산만향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산성
양식 토성
크기 성벽의 길이 726m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구려 시기
현 소재지 요령성 요원시 용산구 산만향백강제약의 북쪽 산
정의

요령성 요원시 용산구 산만향 백강제약의 북쪽 산 위에 자리 잡은 고구려 산성.

위치

성자산 산성은 서쪽 1㎞에 요원 시가지가 펼쳐지고 서남 1.5㎞ 거리에는 용수 산성이 있고, 남쪽에는 동요하를 사이에 두고 공농 산성과 마주보고 있다. 입지 조건으로 보아 용수 산성의 측면을 지키던 산성이다.

특히 성 남쪽 기슭을 따라서는 고대로부터 이용되어온 이통∼요원 간 도로가 지나고 있어, 이통하 방면에서의 침입을 방어했음을 알 수 있다. 동요하를 거슬러 가면 이통하·휘발하·구하 등의 하천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요원 분지로 모여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지리적 요인으로 요원 분지는 동요하 지역에서 교통의 요지로 꼽힌다. 이들 지류를 거슬러 송화강이나 요하 유역으로 나갈 수 있으며, 휘발하를 거쳐 집안 방향에도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현황

성자산 산성은 서북쪽의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두 줄기의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이 축조되었다. 평면은 타원에 가까운 방형을 이루고 있다. 성벽의 길이는 726m이며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성벽은 흙을 층층이 다져 쌓아올렸다. 성벽 바깥으로는 참호가 둘러져 있는데, 서벽 구간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산성에서 가장 낮은 지점인 남벽 중앙에 남문 터가 있다. 골짜기의 협곡 입구를 이용했는데, 성문 부근에서 성문 바깥쪽으로 한 줄기의 성벽을 하나 더 세워두었음을 알 수 있다. ‘U’자형 옹성 구조로 보인다. 북벽의 동단에도 문터가 하나 더 있다고 하지만, 터진 성벽의 흔적만 남아 있어 확실치 않다.

이 밖에 서북 모서리 등에는 각루가 세워져 있었고, 동남 구간에는 반원형 치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벽 인근에서는 건물터가 발견되었으며, 성 안의 경사지는 비교적 평탄하여 거주지로서 활용되었다고 보인다.

의의와 평가

성자산 산성고구려의 요서 지역 진출과 지배 양상을 짐작케 해주는 실물 자료다. 395년 광개토왕은 요서에 거주하던 거란 세력인 패려(稗麗)를 정벌하였다. 이러한 고구려의 요서 정벌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인 요원 지역에 대한 지배는 이보다 앞선 시기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요원시에 남아 있는 용수 산성성자산 산성 그리고 공농 산성을 주목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여호규,『高句麗 城』Ⅱ(國防軍史硏究所, 1999)
  • 이성제 편, 『고구려 성 사진 자료집』-요령성·길림성 서부(동북아 역사 재단, 2006)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文物出版社, 2002)
  • 王禹浪·王宏北,『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哈爾濱出版社, 2007)
  • 國家文物局,『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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