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제

한자 吳達濟
중문 吴达济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문신(文臣)
성별 남(男)
본관 해주(海州)
대표관직 홍문관 수찬
출생 시기/일시 1609년(광해군 1)
활동 시기/일시 1634년(인조 12)
활동 시기/일시 1635년(인조 13)
활동 시기/일시 1636년(인조 14)
활동 시기/일시 1637년(인조 15)
몰년 시기/일시 1637년(인조 15)
추모 시기/일시 1653년(효종 4)
추모 시기/일시 1681년(숙종 7)
추모 시기/일시 1685년(숙종 11)
추모 시기/일시 1686년(숙종 12)
추모 시기/일시 1705년(숙종 31)
추모 시기/일시 1705년(숙종 31)
묘소|단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산 45-14
사당|배향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사당|배향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함정리
사당|배향지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사당|배향지 경상 북도 영주시 상망동
사당|배향지 경상 북도 고령군 운수면 운산리
정의

1637년(인조 15) 청나라와의 척화를 주장하다가 심양에 인질로 잡혀가서 처형된 삼학사(三學士) 중 한 명.

개설

오달제(吳達濟)[1609~1637]의 자는 계휘(季輝)이고 호는 추담(秋潭)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후금에 대해서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병자 호란(丙子胡亂) 이후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그 곳에서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처형되었는데, 이들을 삼학사(三學士)라 한다.

가계

오달제의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수원 최씨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전처는 고령 신씨신득연(申得淵)의 딸이고, 후처는 의령 남씨남식(南烒)의 딸이다.

활동 사항

오달제는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이후 성균관 전적과 병조 좌랑, 세자 시강원 사서를 지냈다. 1635년(인조 13) 사간원 정언과 홍문관 부수찬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 14)에는 청나라에 역관을 보내기를 청한 최명길(崔鳴吉)을 규탄하였다. 같은 해 병자 호란이 일어나자 남한 산성에 들어가 인조를 수행하였다. 1637년(인조 15) 청나라에서 척화신을 보내라고 강요하자 자수하여 청나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이후 심양에 끌려가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 등과 함께 심문을 받고 처형 당하였다.

학문과 저술

오달제의 간찰을 모은 『간첩(簡帖)』을 손자 오수일(吳遂一)이 엮은 뒤 송시열(宋時烈)의 발문을 받았다. 묵매화(墨梅畫) 2점이 전한다. 저서로는 1697년(숙종 23) 오수일이 간행한 『충렬공 유고(忠烈公遺稿)』가 있다.

묘소

오달제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오산리 산 45-14에 위치하고 있다. 시신은 수습하지 못해 평소 차고 있던 요대(腰帶)와 주머니만을 묻었다.

상훈과 추모

오달제는 1653년(효종 4) 부제학을 추증하였고, 1685년(숙종 11)에는 이조 판서가 추가로 추증되었다. 1686년(숙종 12)에는 “충렬(忠烈)”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1681년(숙종 7) 남한 산성 내에 현절사(顯節祠)를 세워 제향하였다. 이밖에도 평택의 포의사(褒義祠), 홍산(鴻山)의 창렬 서원(彰烈書院), 영주의 장암 서원(壯巖書院), 고령의 운천 서원(雲川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정옥자, 『조선 후기 지성사』(일지사, 1991)
  • 한국 고전 번역원(http://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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