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태자성

한자 太子城
중문 太子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요령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 하협하향 태자성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산성
크기 둘레 1,425m
문물|보호단위등급 시급 문물 보호 단위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구려 중기
현 소재지 요령성 무순시 신빈현 하하협하향 태자성촌41°22'25.3"N124°26'29.1"E
정의

요령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신빈현(新賓縣) 하협하향(下夾河鄕) 태자성촌(太子城村)에 있는 고구려 산성.

건립 경위

태자성에서는 고구려 기와를 비롯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어, 고구려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된다. 태자하 상류 일대는 고구려 초기에 양맥(梁貊)이 거주하였던 곳으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되는 것을 볼 때 4세기 이후부터 지방관을 파견하여 해당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태자성은 요령성 신빈현 하협하향 태자성촌 북쪽에 있다. 산성 북쪽에는 태자하(太子河)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산성 동쪽에는 소협하(小夾河)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태자하로 유입된다. 산성은 노모저강(老母猪崗)의 지맥이 북동 방향으로 연장된 산등성이의 북동쪽 끝 부분에 자리하는데, 산성 북쪽과 동쪽은 각각 높이 30~40m, 40~80m의 가파른 절벽이며, 서쪽은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높이 20m의 산비탈이다.

형태

태자성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운데,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이다. 대체로 동쪽과 서쪽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말안장 지세이다.

현황

태자성의 둘레는 1,425m로, 돌을 이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은 구간에 따라 축조방식이 다르다. 자연절벽이 대부분인 동벽은 단애면 위로 석축 성벽을 쌓았으며, 남벽은 지세가 낮아질수록 성벽을 높이 쌓아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였다. 남벽과 서벽은 경사가 급한 일부 구간의 지면을 다듬은 후 성벽을 쌓았는데, 일부는 축대를 쌓아 올린 곳도 있다.

성 내부의 동쪽 경사면에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석축 성벽을 쌓아 내성을 만들었다. 내성의 길이는 280m이며, 기단부 너비는 2.5m, 상단부 너비는 2m, 잔고는 약 3m이다. 내성벽의 기단부는 큰 돌로 4단 가량을 쌓아 성벽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하였다. 외성은 잘 다듬은 쐐기꼴 돌을 이용한 내성과는 달리 장방형의 돌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문은 3곳으로, 북문과 남문, 내성문이 있다. 북문은 태자성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U자형 옹성 구조인데, 배수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내성문은 장방형 옹성 구조로, 문의 너비는 3m이다.

내성 안쪽으로는 고구려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다량으로 분포하고 있어, 고구려의 관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와는 승문타날(繩文打捺) 되었으며, 토기는 니질(泥質) 태토(胎土)에 회전대를 이용하여 제작한 토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 고구려 중기 이후에 건물지가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도 산성의 동쪽과 서쪽 끝부분에는 봉수 시설이 있다. 동북쪽 봉수대는 기단부 직경 15m, 높이 4m, 정상부 직경 2m이며, 판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서남쪽 봉수대는 기단부 직경 25m, 높이 6m이며, 정상부 직경 4m이다.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구체적인 연대는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태자성은 내성과 외성의 축조 방식에 차이가 있어, 축조 시기가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내성 주변에서 기와 조각들이 다량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 중기 이후에는 주변을 관할하는 치소성(治所城)의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 여호규,『高句麗 城』Ⅰ(國防 軍史 硏究所, 1998)
  •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文物出版社, 2002)
  • 王禹浪·王宏北,『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哈爾濱出版社, 2007)
  •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出版社, 2008)
  • 國家文物局,『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