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세자

한자 昭顯 世子
중문 昭显世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세자(世子)
성별 남(男)
본관 전주(全州)
출생 시기/일시 1612년(광해군 4)
혼인 시기/일시 1627년(인조 5)
활동 시기/일시 1637년(인조 15)
몰년 시기/일시 1645년(인조 23)
추모 시기/일시 1645년(인조 23)
출생지 서울시 중구 태평로, 명동, 회현동, 남대문로 일대
묘소|단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정의

병자호란 직후 약 8년간 인질로 심양(瀋陽)에서 생활했던 인조(仁祖)의 세자.

개설

소현 세자(昭顯世子)[1612~1645]의 이름은 이정(李炡)이다. 인조의 맏아들로 세자로 책봉되었다. 병자호란 이후 볼모로 약 8년 간을 심양관(瀋陽館)에서 생활하였다. 1646년(인조 23)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갑자기 사망하였다. 청나라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 아담 샬과 교유하면서 서양의 기술과 과학을 경험하였다.

가계

소현 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청주 한씨한준겸(韓浚謙)의 딸인 인열 왕후(仁烈王后)이다. 세자빈은 금천 강씨강석기(姜碩期)의 딸로, 후일에 민회빈(愍懷嬪)으로 추숭되었다.

활동 사항

소현 세자는 1625년(인조 3)에 세자에 책봉되었고, 1627년(인조 5) 가례(嘉禮)를 치렀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세자 등을 볼모로 요구하자, 1637년(인조 15) 2월 서울을 출발해 4월에 심양에 도착하였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세자 등의 생활을 위해 심양관(瀋陽館)을 세웠다. 당시 심양관에는 약 500여 명이 상주하였다. 이후 세자는 약 8년 간을 심양관에서 생활하였다.

도중에 2차례 정도 귀국한 바 있는데, 첫 번째는 1640년(인조 19) 인조의 병환을 살피기 위한 목적이었고, 1644년(인조 22)에는 장인 강석기의 죽음을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장인의 빈소는 방문하지 못하였다. 심양관에서 생활하던 세자는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641년(인조 19) 청나라가 명나라의 금주위와 송산보를 공격할 때 청나라의 황제를 따라 전장에 머물렀다.

이밖에도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였다. 1644년 4월 청나라의 구왕(九王)도르곤(多爾袞)과 함께 산해관을 넘어 북경에 입성했다가 심양으로 돌아왔고, 1648년(인조 26) 8월에는 청나라 황제가 북경으로 천도하는 행렬을 따라가 북경의 자금성에 입성하였다. 이때 머물던 숙소 근처의 천주교 교당에서 아담 샬을 만나 천주교와 서양의 과학기술을 접했다. 세자는 이밖에도 청나라 조정에서 매월 5일, 15일, 25일에 개최하는 조참(朝參)에 참석하거나 사냥에도 참석하였다.

세자는 또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외교 현안에 대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1639년(인조 17) 세자 시강원의 관원인 정뇌경(鄭雷卿)김종일(金宗一)이 역관 정명수(鄭命壽)를 뇌물 문제로 몰아 청에서 제거하도록 도모한 사건이 발각되었다. 청나라에서는 정뇌경을 처벌하고 김종일은 조선에 보내어 죄를 다스리려고 하였다. 이때 세자는 두 사람의 속환(贖還)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끝내 정뇌경이 처형되었다. 이외에 청나라에 조선의 군병과 식량을 제공하는 일과 포로의 속환 문제 등을 조정하기도 하였다.

1644년 11월 청나라 황제의 사면령이 내려 귀국할 수 있게 되었다. 귀국 직전 소현 세자는 청나라 황제에게 조선의 관원으로 심양에 구금되어 있던 최명길(崔鳴吉)이경여(李敬輿), 김상헌(金尙憲) 등의 석방을 요청한 바 있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져 이들도 귀국하였다. 1645년(인조 23)에 귀국한 소현 세자는 두 달 후인 4월에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묘소

소현 세자의 묘소는 처음에는 소현묘(昭顯墓)라 했으나 고종 때 소경원(昭慶園)으로 격상되었다.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이다.

상훈과 추모

1645년(인조 24) 소현(昭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 김용덕, 「소현 세자 연구」(『사학 연구』18, 한국 사학회, 1964)
  • 신항수, 「소현 세자는 왜 급살되었나」(『내일을 여는 역사』10, 내일을 여는 역사. 2002)
  • 김남윤, 「『심양 일기』와 소현 세자의 볼모살이」(『규장각』29,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2006)
  • 김문식, 「소현 세자의 왕세자 교육」(『국학 연구』18, 한국 국학 진흥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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