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봉림 대군

한자 鳳林大君
중문 凤林大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국왕(國王)
성별 남(男)
본관 전주(全州)
출생 시기/일시 1619년(광해군11)
혼인 시기/일시 1631년(인조 9)
활동 시기/일시 1626년(인조 4)
활동 시기/일시 1637년(인조 15)
활동 시기/일시 1645년(인조 23)
활동 시기/일시 1649년(인조 27)
몰년 시기/일시 1659년(효종 10)
추모 시기/일시 1659년(현종 즉위년)
추모 시기/일시 1740년(영조 16)
출생지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묘소|단소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사당|배향지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 1
정의

소현 세자(昭顯世子)와 함께 인질로 심양(瀋陽)에서 생활했던 조선의 제17대 국왕.

개설

봉림 대군의 휘는 이호(李淏)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정연(靜淵), 호는 죽오(竹梧)이다. 병자호란 이후 약 8년간을 소현 세자와 함께 심양에서 볼모로 있었다. 귀국 후 형을 대신해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1649년(인조 27) 국왕에 즉위하였다. 왕위에 있을 때 북벌(北伐)을 위해 군비 확장과 재정 확대 등에 주력하였다.

가계

봉림 대군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인열 왕후(仁烈王后)이다. 비는 우의정 장유(張維)의 딸 인선 왕후(仁宣王后)이다. 아들은 조선의 제18대 국왕인 현종(顯宗)이고, 딸은 숙신 공주(淑愼公主), 숙안 공주(淑安公主), 숙명 공주(淑明公主), 숙휘 공주(淑徽公主), 숙정 공주(淑靜公主), 숙경 공주(淑敬公主)와 숙녕 옹주(淑寧翁主) 등이다.

활동 사항

봉림 대군은 1626년(인조 4) 대군에 봉해졌고, 1631년(인조 9) 덕수 장씨장유(張維)의 딸과 가례를 치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아우인 인평 대군(麟坪大君)과 함께 비빈·종실 및 남녀 양반들을 이끌고 강화도로 피난했다. 그러나 결국 조선이 후금에 항복한 뒤에는 형 소현 세자 등과 함께 인질로 심양에 잡혀갔다.

심양에서의 생활에 대해 「효종대왕지문(孝宗大王誌文)」에서는 “조금 뒤에는 서쪽으로 몽고(蒙古)의 경계에 갔고, 남쪽으로 산해관(山海關)에 갔으며, 또 더 남쪽으로 금주위(錦州衛)의 송산보(松山堡)에 이르러서는 제장(諸將)들이 패배하여 항복하는 것을 보았다. 또 동쪽으로 철령위(鐵嶺衛)·개원위(開元衛)에 갔고, 또 동북쪽으로 여해부(如奚部)에 이르러서는 한 길이 넘는 두꺼운 얼음을 깨어 그 물을 마시기도 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로 보아 심양 이외에 산해관이나 철령위 등지에서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청나라가 산해관(山海關)을 공격할 때 세자의 동행을 강요하자 이를 극력 반대하고 자기가 대신 가게 해달라고 고집해 동행을 막았다. 그 뒤 서역(西域) 등을 공격할 때 세자와 동행해 그를 보호하였다. 이때의 경험은 그가 왕위에 올라 북벌 정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1645년(인조 23) 귀국한 뒤에 사망한 형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고, 1649년에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올라서는 자신의 북벌에 동조하는 김상헌(金尙憲), 김집(金集) 등의 세력을 불러들이는 한편 군비 확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또한 충청도 등지에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는 등 호란으로 피폐해진 국가 경제 재건에도 주력하였다.

묘소

봉림 대군[효종]의 묘호는 영릉(寧陵)으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에 위치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봉림 대군[효종]은 1659년(현종 즉위년) 선문장무 신성현인 대왕(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의 시호를 받았다. 1740년(영조 16)에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시호를 더하여, 효종 흠천달도 광의홍렬 선문장무 신성현인 명의정덕 대왕(孝宗欽天達道光毅弘烈宣文章武神聖顯仁明義正德大王)이라는 시호를 갖게 되었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 실록』
  • 『영조 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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