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 지석묘

한자 雙房 支石墓
중문 双房石棚盖石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안파진 덕승촌 쌍방둔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지석묘
양식 탁자식 지석묘/개석식 지석묘
크기 160cm[길이]|130cm[너비]|20cm[두께](7호 상석)
문물|보호단위등급 중국 성급 문물 보호 단위
조성 시기/일시 고조선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 6월 중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 8월 초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 8월 초
소재지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안파진 덕승촌 쌍방둔 서산
정의

요령성(遼寧省) 대련시(大連市) 보란점시(普兰店市) 안파진(安波鎭) 쌍방둔(雙房屯)에 있는 청동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고인돌.

개설

쌍방 지석묘는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쌍방둔서산(西山) 정상부의 평탄한 대지에 있는 지석묘군[9기]이다. 6호 개석식(蓋石式) 지석묘에서는 이도하자형(二道河子型)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이도하자식(二道河子式) 선형 동부(扇形銅斧), 쌍방형(雙房型) 심발형 토기, 미송리형(美松里型) 호(壺) 등이 출토되어 일찍부터 관련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위치

쌍방 지석묘는 보란점시 안파진 덕승촌 쌍방둔 서쪽 0.5㎞ 서산 정상 평탄 대지와 그 아래 남쪽 완사면지에 위치하고 있다. 서남쪽 작은 산곡을 사이로 대전(臺前) 지석묘군, 동북쪽 1.5㎞와 4.8㎞에는 유둔(劉屯)서산(西山) 지석묘군과 안평채(安平寨) 지석묘군, 동쪽 1.7㎞에는 현재 수몰된 교둔[喬屯, 벽류하(碧流河)] 개석식 지석묘군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0년 6월 중순 여대시 문물 보사대(旅大市文物普査隊)가 쌍방 지석묘의 지표 조사를 하였고, 1980년 8월 초 수습 조사 하였다.

형태

쌍방 지석묘의 1호 탁자식 지석묘는 구릉 정상의 평탄한 대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벽석만이 제자리에 있을 뿐 나머지는 파괴되어 없어지거나 뽑혀져 이동되어 있는 상태이다. 지석묘에는 바닥석이 없고 마사토 생토 바닥을 그대로 활용하였다. 잔존 상태로 보아 묘실 규모는 길이 1.8m 이하, 너비 1.2m 이하·, 높이 1.4m 이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2호 탁자식 지석묘는 1호 동남쪽 10m 구릉 정상의 평탄한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석 이하 4개 벽석과 바닥석이 잔존하고 있었다. 잔존 상태로 보아 묘실은 장축 방향 동서에 길이 1.85m 이하, 너비 1.2m 이하, 높이 1.9m 가량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3호~5호 지석묘는 구릉 정상 평탄한 대지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3호·4호는 개석식 지석묘이고, 5호는 탁자식 지석묘이다. 3기 모두 장축 방향이 동서이다.

5호 탁자식 지석묘는 1호 남쪽 11m에 위치하고 있는데, 남벽석과 바닥석이 잔존하고 있었다. 조사 당시 아직 세워져 있던 남벽석은 길이 1.4m, 높이 1.04m, 두께 0.14~0.2m였고, 바닥석은 길이 1.45m, 너비 0.7m, 두께 0.1m였다. 묘실의 잔존 흔적·남벽석·바닥석을 통해 복원되는 묘실의 추정 규모는 길이 1.4m 이하, 너비 1.04m 이상이다.

3호·4호 개석식 지석묘는 조사 당시 주민들에 의해 이미 상석이 파괴되고 내부가 모두 훼손된 상태였다.

6호~9호 지석묘는 평탄 대지 아래의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6호만이 개석식 지석묘이다. 6호는 조사 당시 이미 상석이 제거된 상태였는데, 주민들의 증언에 따라 평면 원형, 직경 1.7m, 두께 0.3m로 추정하고 있다. 지하의 묘실은 석관형으로 길이 1.55m, 너비 0.6m, 깊이 0.73m이다. 장축 방향은 동서이다.

7호 지석묘는 5호 남쪽 34m 쌍방 지석묘군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평면 타원형 상석(1.6×1.3×0.1~0.2m) 아래에 길이 1.4m의 벽석 2매가 잔존하고 있었다.

8호 지석묘는 2호 남쪽 4.7m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닥석만이 잔존하고 있었다.

9호 지석묘는 1호 서북쪽 105m에 위치하고 있는데, 상석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만이 알려져 있다.

출토 유물

쌍방 지석묘는 2호 탁자식 지석묘와 6호 개석식 지석묘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2호 탁자식 지석묘에서는 바닥석 동북쪽에서 화장 인골 조각·그물 무늬의 권족[圈足, 굽다리가 한바퀴를 둘러 원형으로 있는 형식] 단경호(短頸壺) 1점·돌 가락바퀴 1점, 6호 개석식 지석묘에서는 묘실 내 바닥에서 이도하자형 비파형 동검 1점· 이도하자식 선형 동부 거푸집 2매 1합·미송리형 호 1점·쌍방형 심발형 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지석묘의 주변에서는 굵은 사립이 혼입되어 있는 홍갈색 무문(無文) 토기 조각이 채집되는데, 무덤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현황

쌍방 지석묘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1호 탁자식 지석묘를 제외하고는 조사 후 계속적으로 변형과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중국 학계의 보고문에는 보고되어 있지 않으나, 지석묘군 중심부에 화강암 암반이 있고, 암반면의 측면과 상면 등에 채석한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1호 탁자식 지석묘의 서남쪽에 절단시의 도흔(刀痕)이 남아있는 지석묘 장벽석 부재가 있다.

의의와 평가

쌍방 지석묘는 요동 남부의 대표적인 지석묘 문화인 쌍방 유형(雙房類型) 쌍방 단계를 대표하는 표지 유적이다. 쌍방 유형은 쌍방 단계 보다 한 단계 앞선 화동광 단계에는 아직 비파형 동검과 선형 동부 등의 청동제 이기류가 조합하지 않다가 쌍방 단계에 이르러 지석묘에 부장되기 시작하였다. 이 단계에 조합하는 청동기가 요동 북부의 이도하자 유형(二道河子類型)의 청동기와 같은 양식이어서 기원전 8~7세기 요동 지역 청동기 제작 기술의 확산 과정과 교류 관계를 해석하는 데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편 쌍방 지석묘군을 비롯한 쌍방 유형의 지석묘 유적을 고조선의 표지 유적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金貞培, 「中國 東北 地域의 支石墓 硏究」(『國史館論叢』 85, 국사 편찬 위원회, 1999)
  • 오강원, 「遼東 南部 부도하 유역권의 형성과 대형 지석묘군 출현의 사회 경제적 배경」(『考古學 探究』10, 고고학 탐구회, 2011)
  • 오강원, 「靑銅器 文明 周邊 集團의 墓制와 社會: 遼東과 吉林 地域의 支石墓와 社會」(『호서 고고학』 26, 호서 고고 학회, 2012)
  • 오강원, 「중국 동북 지역 지석묘의 상석 채석과 운반」(『고고 광장』10, 부산 고고학 연구회, 2012)
  • 오강원, 「비파형 동검을 통하여 본 기원전 8~7세기 요동 북부 지역 청동기 제작 기술과 지역간 기술 교류」(『호남 고고 학보』44, 호남 고고 학회, 2013)
  • 許明綱·許玉林, 「新金县双房石盖石棺墓」(『考古』1983-4, 中国社会科学院考古研究所1984)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