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류하 지석묘

한자 碧流河 支石墓
중문 碧流河盖石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쌍탑진 교둔촌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지석묘
양식 개석식 지석묘
크기 268cm[길이]|200cm[너비]|50cm[두께](24호 상석)
조성 시기/일시 선사/청동기시대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5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76년 3월~4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6년 3월~4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6년 3월~4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6년 3월~4월
소재지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쌍탑진 교둔촌
정의

요령성(遼寧省) 대련시(大連市) 보란점시(普蘭店市) 쌍탑진(雙塔鎭) 교둔촌(喬屯村)에 있던 청동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고인돌.

개설

벽류하 지석묘는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교둔촌 남쪽 구릉 자락의 미고지에 있던 개석식(蓋石式) 지석묘군[총 6기]이다. 교둔 지석묘군 이라고도 부른다. 모두 개석식 지석묘이고, 의례기념물인 석붕산(石棚山) 지석묘 등과는 달리 묘실 내부에서 한두 점의 유물이 부장되어 있다.

위치

벽류하 지석묘는 요령성 대련시 보란점시 쌍탑진 교둔촌 남쪽 남북향의 작은 구릉 서쪽 자락의 미고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벽류하 지석묘는 1975년 여순 박물관이 벽류하 댐 건설과 관련하여 수몰 구역 내 유적을 지표 조사한 후, 1976년 3월~4월 기간 동안 몇 개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발굴 조사를 하였다.

형태

벽류하 지석묘는 조사된 6기의 개석식 지석묘 가운데 3기[21호, 23호, 24호]만이 보고되었다.

21호 지석묘는 장축 방향이 55°이고, 판상석을 이중으로 겹쳐 놓아 상석 시설을 하였다. 상석은 무덤 구덩이의 좌측에 무덤 구덩이의 1/4 가량만 걸친 채 놓여져 있었다. 보고자는 인위적으로 이동되어진 것으로 보았는데 원래부터 그러하였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무덤 구덩이의 평면은 장방형이다.

23호 지석묘는 장축 방향이 310°이고, 조사 당시 상당 정도 교란되어 상석이 결실된 상태에서 지하의 하부 구조가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보고자의 유구 기술로 보아 6호 개석식 지석묘와 같은 구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즉, 길이 1.5m, 너비 0.9m, 깊이 0.5m의 토광식 매장 주체부 한 측에 단을 지어 판석으로 조립한 부장용 석함을 마련해 놓은 구조로 생각된다. 부장용 석함은 상부가 교란되면서 4매 벽석 가운데 2매만을 제외하고는 이미 제거되어져 있는 상태였다.

24호 지석묘는 장축 방향이 320°이고, 구 지표를 기준으로 지하에 무덤 구덩이를 이단 굴광하여 매장 주체부 아래쪽 좌측의 이층대에 3매 또는 4매의 판석으로 부장용 석함을 배치하였다. 석함 위에 길이 2.68m, 너비 2.0m, 두께 0.5m 가량의 불규칙 장방형 상석을 올려놓은 구조로 되어 있다. 이층대를 제외한 매장 주체부의 크기는 평면 장방형에 길이 1.5m, 너비 0.78m, 깊이 0.36m이다.

출토 유물

벽류하 지석묘의 21호 토광 묘실 내에서는 곱돌로 만든 선형 동부(扇形銅斧) 거푸집 1매·연마석· 화장 인골 조각, 23호의 묘실 내에서는 화장 인골 조각· 장경호 2점· 옥석제 도끼 1점, 24호의 장방형 토광 상단에서는 쌍방형 심발형 토기와 새 뼈, 부장용 석함의 좌측 전면 이층대에서는 돌 도끼 1점, 석함 내에서는 쌍방형(雙房型) 심발형 토기 1점이 출토 되었다.

현황

벽류하 지석묘는 현재 벽류하 댐에 수몰되어 잔존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벽류하 지석묘군 또는 교둔 지석묘군은 벽류하 댐에 수몰된 수많은 지석묘 가운데 공식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보고된 거의 유일한 사례이다.

벽류하 지석묘군에서 출토된 쌍방형 심발형 토기와 선형 동부 용범이 보란점시 쌍방 지석묘군에서 출토된 동종 유물들과 같은 시간적 속성을 보이고 있는 것을 통해, 요동 남부의 지석묘문화인 쌍방 유형(雙房類型)이 기원전 8~7세기 쌍방 단계에 요동 북부 이도하자 유형(二道河子類型)의 청동기 제작 기술의 영향을 받아 비파형 동검과 선형 동부를 자체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석붕산 지석묘를 비롯한 쌍방 유형의 지석묘 유적을 고조선의 표지 유적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金貞培, 「中國 東北 地域의 支石墓 硏究」(『國史館論叢』85, 국사 편찬 위원회, 1999)
  • 오강원, 「遼東 南部 부도하 유역권의 형성과 대형 지석묘군 출현의 사회 경제적 배경」(『考古學 探究』10, 2011)
  • 오강원, 「靑銅器 文明 周邊 集團의 墓制와 社會:遼東과 吉林 地域의 支石墓와 社會」(『호서 고고학』26, 호서 고고 학회, 2012)
  • 오강원, 「중국 동북 지역 지석묘의 상석 채석과 운반」(『고고 광장』10, 부산 고고학 연구회, 2012)
  • 旅順博物館, 「遼寧大連新金縣碧流河大石盖墓」(『考古』1984-8, 中国社会科学院考古研究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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