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한자 朴齊家
중문 朴齐家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학자
성별 남(男)
본관 밀양(密陽)
대표관직 영평 현령
출생 시기/일시 1750년(영조 26)
활동 시기/일시 1778년(정조 2)
활동 시기/일시 1779년(정조 3)
활동 시기/일시 1790년(정조 14)
활동 시기/일시 1792년(정조 16)
활동 시기/일시 1794년(정조 18)
활동 시기/일시 1795년(정조 19)
활동 시기/일시 1801년(순조 1)
몰년 시기/일시 1805년(순조 5)
출생지 서울
거주|이주지 서울시 중구 필동
거주|이주지 서울시 중구 묵정동 일대
거주|이주지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부임|활동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임|활동지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유배|이배지 함경북도 종성
정의

조선 후기 북학파(北學派)의 일원으로 『북학의(北學議)』를 저술한 학자.

개설

박제가(朴齊家)[1750~1805]의 본관은 밀양이다. 자는 재선(在先), 수기(修其), 차수(次修) 등이고, 호는 초정(楚亭), 위항도인(葦杭道人), 위항외사(葦杭外史), 정유(貞蕤) 등이다. 박지원(朴趾源),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와 교유하였으며, 정조에 의해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었다. 이덕무, 유득공(柳得恭), 서이수(徐理修) 등과 함께 4검서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1778년(정조 2) 사신단을 수행해 연경(燕京)에 다녀온 후 견문 내용과 자신의 견해를 붙여 『북학의』를 저술했는데, 주로 심양이나 요동 등지에서 견문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가계

박제가의 아버지는 승지(承旨)를 지낸 박평(朴玶)인데, 어머니가 측실로서 신분적으로는 서자이다. 부인은 덕수 이씨이관상(李觀祥)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제가는 어려서 이덕무, 박지원 등과 교유하였고, 1778년(정조 2) 사은사 채제공(蔡濟恭)의 수행원으로 연경에 다녀온 뒤 통진에서 『북학의』를 완성하였다. 『북학의』는 이후 몇 번의 보충 작업을 거쳤다.

1779년(정조 3)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검서관이 되었다. 1790년(정조 14) 2차례 연경에 다녀왔으며, 같은 해 이덕무 등과 함께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완성하였다.

1792년(정조 16)에 부여 현감이 되었고, 1794년(정조 18)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95년(정조 19)에 영평 현령이 되었다. 이후 1801년(순조 1) 다시 연경에 다녀왔고, 같은 해 흉서(凶書) 사건의 죄인 윤가기(尹可基)와의 관계가 드러나 함경도 종성에 유배되었다. 1804년(순조 4)에 풀려났다.

학문과 저술

박제가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과 교유하였으며, 『북학의』를 통해서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수용하자는 북학을 주장하였다.

박제가의 시와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서상수(徐常修) 등의 시를 함께 모아 엮은 「백탑청연집(白塔淸緣集)」이라는 시집과 「명농초고(明農初稿)」라는 시집이 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박제가의 시문집으로는 『정유각집(貞蕤閣集)』과 『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이 전한다.

묘소

박제가는 경기도 광주부엄현(崦峴)의 선산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현재 그 묘소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박제가의 사후에 조수삼(趙秀三)이 「곡박초정제가(哭朴楚亭齊家)」라는 시를 지어 죽음을 애도하였고, 성해응(成海應)이 「박재선시집서(朴在先詩集序)」를 지어 역시 애도하였다.

참고문헌
  • 박제가 지음·안대회 교감, 『완역 정본 북학의』(돌베개, 2013)
  • 한국 고전 번역원(http://www.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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