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송리 형호

한자 美松里 型壺
중문 美松里型壶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요령성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호(壺)
정의

요동(遼東)의 일부 지역과 서북한 지역에서 유행한 구경부가 발형(鉢形)인 후기 청동기 시대의 호(壺).

개설

미송리 형호는 요동 북부의 전기 청동기 문화인 마성자 문화(馬城子文化) 중기 단계에 처음으로 출현하여 요동 북부의 후기 청동기 문화인 이도하자 유형(二道河子類型)의 중심적인 유물 요소를 이루게 된다.

동체부를 중심으로 한 횡집선문의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무문류와 유문류로 대분되고, 동체 형태·동체부 중위·전체 기고에 대비한 구경부의 상대적 길이 비율의 형태 및 계측적 속성에 따라 몇 개의 형식으로 세분된다.

요동 지역에서는 이도하자 유형을 절대 중심으로 하여 기원전 6세기까지 제작되었고, 서북한 지역에서는 기원전 8~4세기의 기간 동안 제작되었다.

형식

미송리 형호는 과거 동체부를 중심으로 한 횡집선문을 미송리 형호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속성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최근 요동과 서북한 지역에서 횡집선문이 없으나 기타 구경부와 동체부 등의 속성에서는 횡집선문이 있는 미송리 형호와 똑같은 토기들이 다수 조사되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최근에는 발형 구경부를 미송리 형호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로 설정한 뒤, 미송리 형호를 무문류[I류]와 유문류[II류]로 대분하고 있다.

2차 분류는 동체 중위 상부와 하부의 수축 상태, 기신 라인의 전개에 따라 미송리 형호의 동체부 전체 형태가 결정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동체 중위가 동체 중간부 이하에 있고 동상부와 동하부가 수축되어 있으며 동체 형태가 전체적으로 단동인 것[I식], 동체 중위가 동체 중간부 이하에 있되 동상부 등이 팽창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동체 형태가 단동과 중동인 것[II식], 동체 중위가 동체 중간부 이하에 있고 동상부가 동하부에 비해 이상적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것[III식], 동체 중위가 동체 중간부에 있고 동체 형태가 횡방향의 타원형을 이룬 것[IV식], 동체 중위가 동체 중간부에 있고 동체 형태가 정원형에 가까운 것[V식], 동체 중위가 동체 중간부에 있고 동체 형태가 종방향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VI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다음으로 전체 기고에 대비한 구경부의 상대 길이 비율을 삼차적인 분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데, 이는 구경부의 상대 길이 비율이 일정 지역의 구역성 뿐만 아니라 시간성 또한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구경부의 길이 비율 지수 0.2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하를 a아식, 그 이상을 b아식으로 양분하고 있는데, a아식에는 본계만족자치현(本溪滿族自治縣)산성자(山城子) C굴 2호 무덤, 보란점시(普蘭店市)쌍방(雙房) 6호 개석식 지석묘, 용천군(龍川郡)신암리(新岩里) 등이, b아식에는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미송리(美松里) 상층, 북창군(北倉郡) 대평리(大坪里) 5호 지석묘, 개천군(价川郡) 묵방리(墨房里) 24호 지석묘, 평양시(平壤市)남경(南京) 3호 주거지 등이 있다.

˂미송리형호의 여러 형식˃

시공간성과 연대

미송리 형호의 무문류[I류]는 기원전 13~7세기, 유문류[II류]는 기원전 12~6세기의 기간 동안 제작되었다. 세부 형식별 유행 시기를 보면, I식은 요동 지역에만 분포하고 있고 기원전 13·12~7세기, II식은 요동 지역에서는 기원전 11~7세기·서북한 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 중엽~6세기, III식은 요동 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 서북한 지역에서는 기원전 7~5세기, IV식은 요동 지역에서만 제작되었고 기원전 11~7세기, V식은 요동 지역에서는 기원전 11~7세기·길림성(吉林省) 길림시(吉林市)에서는 기원전 8세기·서북한 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 VI식은 요동 지역에서는 기원전 11~6세기·서북한 지역에서는 기원전 7~4세기·길림성 길림시 일대에서는 기원전 8세기에 유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미송리 형호는 요동 지역에서는 무덤의 부장품으로만 사용된 반면, 압록강 유역 남안에서는 생활 유적을 중심으로 하여 무덤의 부장품으로도 부장되었고, 대동강 유역에서는 철저하게 주거지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상대적으로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고, 외면을 부분적으로라도 흑색·흑갈색 마연을 하는 등 다른 기종의 부장품이나 일상 용기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주거지에서만 발견되는 대동강 유역에서는 태토의 정선과 기형의 특수화에 더욱 몰입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주거지 내 발견 정황을 고려할 때 일상 생활 용기가 아닌 무언가 특수한 의미가 부여된 토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송리 형호가 요동형 비파형 동검 등 청동기와 함께 이도하자 유형 주변 지역으로 매우 빠르게 확산된 것으로 보아, 새로운 기술 문명을 상징하는 토기로서 인식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과거 북한학계에서는 비파형 동검·지석묘와 함께 미송리 형호를 고조선의 표지 유물로 규정하였었는데, 최근에는 요동 북부 이도하자 유형의 전형 유물일 뿐, 고조선의 표지 유물은 아니라는 주장에 의해 부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오강원, 「遼東~西北韓 地域 美松里 型壺의 地域 文化와 社會 文化的 含意」(『한국 상고사 학보』85, 한국 상고사 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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