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첩

한자 口妾
중문 口妾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정의

조선 후기 연경(燕京)으로 가던 사신 일행이 사행 길에서 마주친 한족(漢族)과 만주족(滿洲族) 여인들을 자신의 첩(妾)이라고 말했던 행위.

개설

1780년(정조 4)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된 사신을 수행하여 열하(熱河)를 여행하고 돌아온 박지원(朴趾源)의 『열하 일기(熱河日記)』에 기록된 풍습의 하나이다.

박지원은 같은 해 7월 9일 만보교(萬寶橋)와 연대하(烟臺河), 산요포(山腰鋪) 등을 거쳐 십리하(十里河)에 도착하였다. 박지원을 포함한 일행은 이 과정에서 한족과 만주족의 여인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이때 조선측의 비장(裨將)이나 역관(譯官)들은 말 위에서 마주친 여인들을 각각 첩으로 정하였다. 이를 구첩이라 하는데, 만일 남이 먼저 차지한 경우는 겹치지 않도록 정하였다고 한다. 구첩으로 인해 가끔은 샘도 내고 화도 내며 욕도 하였다고 한다. 박지원은 이런 구첩은 “먼 길에 심심풀이의 한 방법”이라고 기록하였다.

참고문헌
  • 『열하일기(熱河日記)』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