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총

한자 高麗叢
중문 高丽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연계기정(燕薊紀程)」|『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계산기정(薊山紀程)』
정의

조선 후기 연경(燕京)으로 가는 조선 사신 일행이 거쳐 가던 요동에 있던 지명의 하나.

개설

고려총이라는 명칭은 고려 후기 이곳에 고려계 사람들이 거주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고려총은 연경으로 가는 사신 일행이 지나가던 곳 중 하나로, 왕보대(王寶臺)를 거쳐 고려총을 지나 아미장(阿彌莊)에 이르렀다.

명칭 유래

고려 후기 고려총 일대는 동녕위(東寧衛)가 설치되었던 곳으로, 고려의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이후 조선 시대에도 고려계 유민들이 계속 거주하였는데, 최현(崔晛)[1563~1640]은 고려촌의 모습에 대해 “고려촌의 아동들은 어려서부터 고려의 말을 하고 자라면서 의상과 관복(冠服)도 고려의 것을 많이 썼다”고 기록하였다.

형성 및 변천

고려총은 고려 말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 이주해간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베이징으로 가는 사신 일행이 거쳐 가던 곳 중 하나로, 이곳을 거치면서 옛 조선의 영토를 회상하기도 하였다.

1828년(순조 28) 사은 겸 동지사의 일원으로 연경에 다녀온 박사호(朴思浩)는 「연계 기정(燕薊紀程)」에서 고려총의 풍경에 대해 “다닥다닥 벌여 있는 무덤 앞의 비석, 노석(爐石)을 보면 이것들이 우리나라 사람의 제도가 분명하다”고 하면서 요동은 조선의 옛 땅임을 회상하였다.

다만 조선 후기 고려총은 인가가 별로 없었던 듯 촌락이 보잘 것 없다는 기록이 확인되기도 한다. 『계산 기정(薊山紀程)』을 기록한 찬자는 다음과 같이 시로서 감상평을 남기기도 하였다.

포로들 견양의 우리 들어가기 부끄러워 / 南冠羞入犬羊屯

딴 고장에 머물러 한 마을이 되었네 / 淹滯殊方自一村

죽어서 동쪽 사람 오가는 길에 묻혀서 / 死葬東人來去路

해마다 외로운 혼 조문해 주길 기다리네 / 年年猶待弔孤魂

위치 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중국요령성 일대로 추정된다.

관련 기록

조선측의 연행 기록인 박사호(朴思浩)의 「연계 기정(燕薊紀程)」을 비롯해 서유문(徐有聞), 『무오 연행록(戊午燕行錄)』, 저자 미상의 『계산 기정(薊山紀程)』 등에서 고려총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참고문헌
  • 박사호(朴思浩), 「연계기정(燕薊紀程)」『심전고(心田稿)』 권1
  •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 『계산기정(薊山紀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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