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高句麗 城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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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 高句丽城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길림성 요령성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
길림성(吉林省)과 요령성(遼寧省), 한반도 일대에 분포하는 고구려 성곽.
고구려 성곽은 한반도 중부 지방에서부터 중국 동북 지방의 만주 벌판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서 확인된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성을 쌓기 시작하여 전 영역에 성을 축조하고 성을 단위로 통치하였다. 왕도에는 평지성과 산성이 짝을 이루고 지방 각지에도 성을 쌓아 행정의 중심지인 동시에 군대가 주둔하는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중국 기록에서 고구려 사람들은 산에 의지하여 성을 쌓고 잘 지켜서 쉽게 함락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고구려 성은 고유의 특색을 보인다.
도성은 평지성과 산성으로 이루어졌고, 지방 각지에는 산성을 쌓았다. 지방 각지에 있는 산성은 하천이나 계곡의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다. 성의 축조는 쐐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쐐기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서 성을 쌓는 것은 고구려 고유의 성을 쌓는 방식이다. 현재 쐐기 모양 돌로 쌓은 고구려 산성은 중국요령성과 길림성, 북한 지역에 170여 개소가 있다.
-성의 축조와 시설
고구려 성은 입지 조건에 따라 평지성과 산성으로, 성의 축조 재료에 따라 토성·석성·토석 혼축성 등으로 나뉜다. 판축토를 쌓아 축조한 토성이나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한 토석 혼축성은 주로 평지성에서 확인된다. 석성은 쐐기형 돌로 축조한 석성과 판축 후 바깥쪽에 돌을 덮는 석성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은 산성이 석성이다.
성의 시설로는 성문과 성벽, 그리고 성벽에는 마면[치]과 여장, 성벽이 꺾이는 곳에 세운 각루 등이 있고, 성 내부에는 장대나 망대, 저수지나 우물, 샘 등과 건물터와 병영터 등이 있다. 성의 둘레에는 해자를 돌리거나 참호를 파기도 하여 방어적 기능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시설은 특히 4세기 이후의 성들에서 잘 보인다. 4세기 이후의 성들은 구릉의 사면과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아서 성 내외로 출입이 편할 뿐 아니라 성 내부가 넓어서 적이 침입하게 되면 성으로 들어가 전쟁을 하는 요새가 되기도 한다.
-도성과 도성 체계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평지성과 산성으로 구성된 도성 체계를 갖추었다. 초기 도성지인 환인 지역의 오녀산에 쌓은 산성인 오녀 산성(五女山城)이 흘승골성(紇升骨城)으로 비정된다. 초기의 평지성인 졸본성(卒本城)으로는 하고성자(下古城子) 토성이 비정된다. 그러나 하고성자 토성의 위치가 광개토왕 비문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있어서 광개토왕 비문과 부합되는 위치의 평지성인 나합성(喇哈城)으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나합성이 초기 성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집안 지역은 통구 분지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로서, 국내성은 기원전후 무렵부터 427년 평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고구려의 왕도였다. 평상시 도성인 국내성은 둘레 2.7㎞의 석성으로, 성 내에서 궁전터로 추정되는 대규모 건물지 등이 조사되었다. 산성자(山城子) 산성은 국내성 서북 방향으로 2.5㎞에 떨어져 있으며, 성 내에서 왕궁지로 비정되는 한 변 90여 m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산성자 산성은 환도 산성(丸都山城)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평양성 시기의 도성으로는 대성 산성(大城山城)과 안학궁(安鶴宮) 및 평양성(平壤城)이 있다. 대성 산성은 6개의 봉우리를 연결한 포곡식(包谷式) 석성으로 둘레 7㎞ 정도이다. 안학궁은 천도 직후의 왕성으로 비정되지만, 출토 기와의 연대가 늦기 때문에 청암리 토성(淸巖里土城)이 천도 직후의 궁성이라는 의견도 있다. 평양성은 양원왕(陽原王) 8년[552]에 축조해 평원왕(平原王) 28년[586]에 왕성을 옮겼다. 평양성은 북성과 내·외·중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식 석성이다.
-산성과 관애
고구려 지방 각지에는 크고 작은 산성이 축조되었다. 산성은 4세기를 기준으로 전기 성과 후기 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 성은 절벽과 가파른 산등성이 등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일부만 쐐기형 돌을 이용하여 층마다 안으로 들여쌓았다. 성 내로 출입이 용이하지 못하며, 규모도 크지 않다. 주로 환인(桓仁), 집안(集安), 신빈(新賓), 통화(通化) 등에 집중 분포하여서 도성 방위를 주목적으로 교통로를 차단하는 차단성과 군사적 초소로서 기능하였다.
후기의 성은 확대된 고구려 전 영역에 분포한다. 구릉의 사면과 평탄지를 연결하여 축조하여 평상시 거주성과 방어의 기능을 겸하였다. 성내 출입이 용이하도록 성문은 평지나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하며, 높은 곳에는 장대를 세워서 방어에 유리하도록 하였다. 대형 산성은 내·외성으로 이루어지거나 보조성을 갖는 등 복합식이 많으며, 행정 소재지로서 전쟁시 주민을 입거시키는 지방 지배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