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고교보

한자 高橋堡
중문 高桥堡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요령성 금주시  
시대 조선/조선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관련문헌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연기(燕記)」, 『연원직지(燕轅直指)』 , 『금주부지(錦州府志)』
제정 시기/일시 조선
비정 지역 요령성 호노도시(葫蘆島市) 고교진(高橋鎭)
정의

조선 후기 연경(燕京)으로 가는 조선 사신 일행이 거치던 요령성(遼寧省) 남서부에 위치한 금주(錦州)에 속한 지역.

개설

고교보는 고교포(高橋鋪) 또는 고아포(高兒鋪)라고도 불리던 지역이다. 서쪽으로는 영원주(寧遠州)가, 동쪽으로는 소능하참(小凌河站)이 위치한다.

명칭 유래

고교보는 중국 명나라 때 영원위역(寧遠衛驛)에 부속되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고교보는 중국명나라에서 영원위를 설치한 시기인 1428년(선덕 3, 세종 10)을 전후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청나라 때에는 금주(錦州) 영원위에 속하였는데, 『금주부지(錦州府志)』에서는 고교성(高橋城)이라고 하여 금주부성(錦州府城)에서 서남쪽으로 5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위가 1리(里) 24보(步)의 크기라고 기록하였다.

고교보는 조선 후기 조선의 사신 일행이 북경(北京)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목에 조선측 사신의 거처를 위해 설치한 30여 개 참(站) 가운데 한 곳이다.

홍대용(洪大容)은 연행 일기인 「연기(燕記)」에서 당시 고교보의 상황에 대해 “현재는 사람과 가축이 온 들에 널려 있고, 성과 보루는 허물어진 채 그대로 있었다”라고 하며 전쟁이 없는 시기의 모습을 기록하였다.

1832년~1833년까지 동지사 겸 사은사로 연경에 다녀온 서경보(徐耕輔)는 동지사(冬至使) 일행으로 가다가 1824년에 고교보에서 사망한 권상신(權常愼)[1759~1824]을 회상하기도 하였다.

위치 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고교보는 오늘날 요령성 호로도시(葫蘆島市) 고교진(高橋鎭)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고교보에 관해서는 조선측의 연행 기록인 이의현(李宜顯)의『경자 연행 잡지(庚子燕行雜識)』, 홍대용(洪大容)의 「연기(燕記)」, 서경보(徐耕輔)의『연원 직지(燕轅直指)』 등이 참고된다. 중국의 지방지인 『금주부지(錦州府志)』에서도 고교보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참고문헌
  • 서경보(徐耕輔), 『연원직지(燕轅直指)』
  • 이의현(李宜顯), 『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 홍대용(洪大容), 「연기(燕記)」(『담헌서(湛軒書)』 외집 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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