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창 동대장자 고분군

한자 建昌 東大杖子 古墳群
중문 建昌东大杖子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호로도시 건창현 서감창향 동대장자촌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조선
상세정보
성격 고분
양식 적석목관묘|목관묘|목곽묘
크기 길이 300㎝, 너비 200㎝, 깊이 120㎝(32호 무덤 구덩이 상면)
문물|보호단위등급 중국 성급 문물 보호 단위
조성 시기/일시 고조선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 8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6~8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1년 10~11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9~11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3년 10~11월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현재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대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0년~현재
소재지 요령성 호로도시 건창현 서감창향 동대장자촌
정의

요령성 호로도시 건창현 서감창향 동대장자촌에 있는 청동기 시대[고조선 시대]의 고분군.

개설

건창 동대장자 고분군은 요령성 호로도시 건창현 서감창향 동대장자촌과 뒷산 구릉 완사면지에 있는 고분군이다. 십이대영자 문화(十二臺營子文化) 남동구 유형(南洞溝類型) 말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전국연(戰國燕)이 이 지역을 점유한 시기의 고분도 포함되어 있다.

위치

건창 동대장자 고분군은 요령성 호로도시 건창현 서감창향 동대장자촌 대릉하(大凌河) 남쪽 상류 북안의 이급 충적대지에 위치 하고 있다. 고분군의 범위는 이급 충적대지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는 동대장자촌으로 부터 마을 뒷산 아래의 완사면지까지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건창 동대장자 고분군은 1999년 동대장자 고분군의 도굴로 알려졌다. 고분군의 도굴 후 호로도시 문물 관련 부서와 공안부가 공동으로 현장을 확인하고 주민들로부터 반리문 동호(蟠螭文銅壺)와 금병(金柄) 비파형 동검 등을 회수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같은 해 요령성 문물 고고 연구소·호로도시 박물관·건창현 문물 관리소가 공동으로 조사단을 구성하여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를 하였다.

2000년 8월에는 1999년의 시굴 조사를 바탕으로 1차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13기의 고분을 조사하였다.2001년 6~8월에는 2차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2기의 고분을 조사하였다. 2001년 10~11월에는 3차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12기의 고분을 조사하였다. 2002년 9~11월에는 4차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13기의 고분을 조사하였다. 2003년 10~11월에는 5차 구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10여 기의 고분을 조사하였다. 2014년 현재까지 계속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말기~서한 초기의 적석 목관묘·목관묘·목곽묘가 다수 조사 되었으며, 유물 또한 수 천 점이 출토 되었다.

형태

건창 동대장자 고분군의 특징을 2000~2003년 발굴 조사된 13기[1~4호, 6호, 7호, 10호, 16호]를 중심으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 고분은 무덤 구조가 특이한 편이다. 생토 이층대를 갖춘 무덤 구덩이와 중국식의 관·곽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중국 내지 목관·곽묘의 속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무덤 구덩이의 입구로부터 관·곽 윗면에 이르기까지에 길이 15~20㎝ 안팎의 산돌과 강돌을 쌓았다는 점에서는 요서 지역 전형의 석곽묘의 속성을 보이고 있다. 머리 쪽 적석부에 소 이빨을 포함한 위아래 턱뼈를 순생 하였다는 점에서도 중국 내지의 전형적인 목관·곽묘와 차이점을 보인다.

무덤의 규모는 무덤구덩이를 기준으로 할 때, 비교적 큰 것이 길이 10m, 너비 5~6m이고, 작은 것이 길이 2~5m, 너비 1.2~3.4m 가량이다. 무덤의 장축 방향은 동서이다.

출토 유물

건창 동대장자 고분군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13기의 무덤에서 모두 320여 점의 각종 유물이 출토 되었다. 청동기 중에서 무기류는 비파형 동검, 중세형 동검, 금도금한 T자형 청동 검병의 검병두, 동모, 꺽창, 양익유경식동촉, 삼익유공식동촉 등이 출토되었다.

거마구류로는 세장형 동부, 선형 동부, 청동 손 칼, 청동 끌 등의 공구류 및 두 쪽 말 재갈, 조수단(鳥首端) 말 재갈 멈치, 청동 말띠 장식, 청동 굴대끝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동세[銅洗, 청동대야], 동이[銅匜, 청동주전자], 동두(銅豆), 동쌍련호(銅雙聯壺), 동정(銅鼎) 등의 청동 예기와 곡봉형 대구(曲棒形帶鉤) 등의 패대류가 출토 되었다.

토기로는 우각형파수부관(牛角形把手附罐), 대구장경호(大口長頸壺), 채회장경호, 고병두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석기류로는 베게 모양 검병 두식(劍柄頭飾)과 마노구슬 등이 보고 되었다.

현황

건창 동대장자 고분군은 2000년 발굴 조사가 있은 후 현재까지 거의 매 해 소규모 발굴 조사가 지속되고 있다. 도굴로 시작된 발굴 조사이지만 양질의 고분군이고 초기에 적절하게 대처한 까닭에 유적의 조사 상태와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건창현 동대장자 고분군은 십이대영자 문화 남동구 유형 말기의 표지 유적이다. 이 유적 등의 조사를 통해 십이대영자 문화가 기원전 6~5세기에는 하북성 북부의 동남구(東南溝)~옥황묘 문화(玉皇廟文化) 옥황묘 유형(玉皇廟類型)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후기 북방계 유물 요소를 집중적으로 수용하였고, 기원전 4~3세기 초에는 전국연 문화(戰國燕文化)의 유물 요소를 수용하였음이 잘 드러난다.

십이대영자 문화는 기원전 6~5세기의 교류를 통해 십이대영자 문화의 중심이 십이대영자 유형기(十二臺營子類型期) 십이대영자 문화의 중심 지역이었던 조양(朝陽) 일대에서 요령성 서부의 객라심좌익몽고족자치현 일대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 십이대영자 유형의 유물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던 주민 집단이 요령 동부 쪽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요하(遼河) 동쪽 심양시(沈陽市) 일대에 중심을 둔 십이대영자 문화 정가와자 유형(鄭家窪子類型)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한편 연구자에 따라 동대장자 고분군을 비롯한 십이대영자 문화 남동구 유형을 정가와자 유형을 중심으로 요하 양안에 형성되어 있던 고조선 연맹체(古朝鮮聯盟體)에 대비된 또 하나의 고조선 연맹체로 보고, 이 고조선 연맹체가 『위략』에 언급되어 있는 조선후(朝鮮侯) 고조선(古朝鮮)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오강원, 「중국 동북지역 세 청동단검문화의 문화지형과 교섭관계」(『선사와 고대』20, 한국고대학회, 2004)
  • 오강원, 「遼寧省 建昌縣 東大杖子 積石 木棺槨 墓群 出土 琵琶形 銅劍과 土器」(『科技 考古 硏究』12, 아주 대학교 박물관, 2006)
  • 오강원, 「遼寧 地域의 靑銅器·初期 鐵器 時代 複合 社會의 形成과 社會 變動」(『先史와 古代』 38, 한국 고대 학회, 2013)
  • 國家文物局 主編, 『2000中國重要考古發現』(文物 出版社, 2001)
  • 遼寧省 文物 考古 硏究所·葫蘆島市 博物館·建昌縣 文物 管理所, 「遼寧 建昌縣 東大杖子 墓地 2001年 發掘 簡報」(『考古』2014-12, 中國 社會 科學院 考古 硏究所, 2014)
  • 遼寧省 文物 考古 硏究所·葫蘆島市 博物館·建昌縣 文物 管理所, 「遼寧 建昌縣 東大杖子 墓地 2002年 發掘」(『考古』2014-12, 中國 社會 科學院 考古 硏究所,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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