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산 지석묘

한자 仰山 支石墓
중문 仰山石棚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요령성 영구시 개주시 귀주진 앙산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지석묘
양식 탁자식 지석묘
크기 460cm[길이]|450cm[너비]|43cm[두께](상석)
조성 시기/일시 고조선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55년
훼손 시기/일시 1955년 이전
훼손 시기/일시 1970년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5년
소재지 영구시 개주시 귀주진 앙산촌
정의

요령성(遼寧省) 영구시(營口市) 개주시(蓋州市) 귀주진(歸州鎭) 앙산촌(仰山村)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개설

앙산 지석묘는 요령성 영구시 개주시 앙산촌의 부도하(浮渡河) 북안 저산 구릉 자락의 대지성 평지에 있는 중대형 탁자식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상석과 벽석의 가공 상태와 구조가 개주시석붕산(石棚山) 지석묘와 유사하여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규모는 석붕산 지석묘보다 작다.

위치

앙산 지석묘는 개주시 귀주진 앙산촌 북쪽 구릉 자락의 대지성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북쪽 1.5㎞에는 귀주진 귀남촌(歸南村), 서쪽 1.4㎞에는 부도하, 부도하를 타고 동쪽 10㎞에는 개주시석붕산 지석묘, 동남쪽 7k㎞ 부도하 남안에는 와방점시(瓦房店市) 유수방(楡樹房)서산(西山) 지석묘가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앙산 지석묘는 1955년 동북 박물관(東北博物館) 문물대(文物隊)가 지표 조사를 하였다.

형태

앙산 지석묘는 1955년 조사 당시 상석이 이미 세 조각으로 파열되어 있었는데,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인위적으로 파괴한 것이 아니라 벼락을 맞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상석은 평면 정방형으로, 길이 4.6m, 너비 4.5m, 두께 0.43m이다. 개주시석붕산 지석묘해성시(海城市)석목성(昔牧城) 지석묘 등과 마찬가지로 상석과 벽석의 가공 상태와 설계가 치밀하게 되어 있었다. 장축 방향은 서쪽으로 20°기울어진 남쪽이다. 묘실 규모는 길이 2.15m, 너비 2.1m, 높이 1.65m이다.

출토 유물

앙산 지석묘는 1955년 조사 당시 지석묘 부근에서 홍갈색 토기 조각 등이 수습 되었다고 한다.

현황

앙산 지석묘는 1940년대 중반까지 이 일대 주민들이 영험하다 믿어 기원 장소로 활용하는 등 나름 보호를 받다가, 1955년 이전에 벼락을 맞아 세 조각으로 파괴 되었다. 이후 조금씩 훼손되다가 문화 대혁명 기간에 미신 타파와 주택 건설 등의 이유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의의와 평가

앙산 지석묘는 쌍방 유형(雙方類型) 전기를 대표하는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입지와 규모 및 가공 상태 등으로 보아 무덤이 아닌 의례 기념물 또는 표지물 등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개주시석붕산 지석묘 등과 함께 청동기 시대 요동 남부 지역의 물질 문화인 쌍방 유형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유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앙산 지석묘를 비롯한 쌍방 유형의 지석묘 유적을 고조선의 표지 유적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 오강원, 『비파형 동검 문화와 요령 지역의 청동기 문화』(청계, 2006)
  • 金貞培, 「中國 東北 地域의 支石墓 硏究」(『國史館論叢』85, 국사 편찬 위원회, 1999)
  • 오강원, 「遼東 南部 부도하 유역권의 형성과 대형 지석묘군 출현의 사회 경제적 배경」(『考古學 探究』10, 고고학 탐구회,2011)
  • 오강원, 「靑銅器 文明 周邊 集團의 墓制와 社會:遼東과 吉林 地域의 支石墓와 社會」(『호서 고고학』26, 호서 고고 학회, 2012)
  • 오강원, 「중국 동북 지역 지석묘의 상석 채석과 운반」(『고고 광장』10, 부산 고고학 연구회, 2012)
  • 符松子, 「遼寧省新發現兩座石棚」(『考古通訊』1956-2, 中国社会科学院考古研究所,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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