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고성자 산성

한자 古城子 山城
중문 古城子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요령성 철령시 개원시 팔나수향 고성자촌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구려
상세정보
성격 산성
양식 키 모양
크기 약 1.1㎞[길이]
문물|보호단위등급 개원현 문물 보호 단위
조성|건립 시기/일시 고구려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0년 ~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7월 22일
현 소재지 요령성 철령시 개원시 팔나수향 동쪽 7.5㎞ 거리의 고성자촌 동쪽 산에 위치
정의

요령성 철령시 개원시 팔나수향 동쪽 7.5㎞ 거리의 고성자촌 동쪽 산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

위치

고성자 산성은 송요 대평원에서 길림 합달령 방면으로 약 40㎞ 정도 들어온 청하 중상류 지역으로, 청하와 아랍하 사이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산줄기 서단에 위치하였다. 해발 200m 의 주봉에서 두 갈래로 둥그스름하게 뻗어 내린 산등성이가 키 모양의 산골짜기를 감싸고 있다. 산줄기로 이어지는 동쪽을 제외하면 삼면이 충적 평지와 바로 이어지는 돌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산등성이 안쪽은 비교적 완만한 반면, 바깥쪽은 경사가 가파르다. 또한 남북 양쪽의 청하와 아랍하가 산줄기로 이어지는 동쪽을 제외한 삼면을 가로막고 있어 천연 해자를 이루고 있다.

현황

고성자 산성의 성벽은 골짜기를 둥글게 감싼 산등성이를 따라 흙과 잡석을 섞어 축조하였다. 움푹 들어간 곳에는 흙을 채워 평평하게 다지는 등 여러 산봉우리를 이어서 성벽을 축조하였다. 성벽 안쪽에 회곽도(廻郭道)를 마련해두었는데, 서문을 통해 산 아래 작은 길로 이어진다.

남벽과 북벽에는 산봉우리를 둘러싼 작은 성이 있는데, 현지 주민들은 화원(花園)이라 부른다. 이는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산봉우리 안팎에 모두 성벽을 축조한 것인데, 남쪽 작은 성은 동서 길이 56m, 남북 너비 14m이다.

서쪽 골짜기 안쪽 40m 지점에는 길이 60m, 높이 12m의 토벽을 제방처럼 튼튼하게 구축하였다. 성문은 서쪽 골짜기 입구에 자리 잡은 서문 한 곳이다. 서쪽 골짜기 입구는 청하 연안의 충적평지로 이어지는 곳으로 방어상 취약점에 해당한다. 이에 골짜기 입구 안쪽 약 40m 지점에 판축 기법을 이용하여 거대한 토벽을 구축하여 남북 양쪽 언덕 산이 서벽을 감싸면서 자연적인 옹성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서문은 토벽 남단과 남쪽 언덕 산기슭 사이에 위치했는데, 너비 5[10m라고 하는 자료도 있다] 방향 265도이다. 그리고 성문 바깥쪽에는 남쪽 언덕 산의 기슭을 따라 성 안팎을 왕래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너비 8~10m, 길이 40m 전후로 성 안의 회곽도와 연결되어 있다. 한편 남쪽 언덕 산의 성벽은 산비탈을 따라 골짜기 안쪽으로 경사지게 내려오다가 서문 남측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서문을 안팎으로 감싸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 옹성 구조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한편 토벽 북단에는 성 안팎으로 왕래하기 위해 나중에 조성한 활구(豁口)가 있다.

성벽 모서리에는 망대를 구축하였다. 4개가 확인되었는데, 윤곽을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다. 서쪽 골짜기 입구의 토벽 안쪽에는 저수지가 있다. 본래 일 년 내내 물이 흘러넘쳤다고 하는데, 현재는 토사에 의해 거의 매몰된 상태이다. 저수지 서쪽에는 배수구가 있다. 토축 성벽 하단부에 돌로 축조하였는데, 최근에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성 안의 물은 이 배수구를 통해 바깥으로 흘러나간다.

성 안에서는 기와 조각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건물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특히 서쪽 골짜기 토벽 안쪽 대지에 기와 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근에 중요한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성벽 안쪽에는 직경 1m, 너비 0.5~0.7m의 원형 구덩이가 8~10m 간격으로 열을 이루며 분포되어 있다. 산등성이에 위치한 성벽 안쪽에서는 거의 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특히 북벽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성의 사례로 보아 병사들이 거주하던 반지하식 주거지로 보고 있다.

고구려 시기의 전형적인 붉은 색 기와 조각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나왔다. 기와는 대개가 붉은 색 평기와로 안쪽에는 포문(布紋)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밖에 바깥 면에 모서리를 연이은 평행 사변형을 여러 줄로 양각한 특이한 경우도 있는데, 서풍 성자산성(西豊城子山城)에서도 나온 바 있는 기와이다. 유물은 토기를 비롯하여 숟가락. 어망추, 가락 바퀴 등이 있다. 철제 화살촉도 출토되었다. 평평한 도끼날형으로 뿌리는 원추형이며, 날과 뿌리 사이에 마디가 있다. 돌 절구도 나왔다. 이 밖에 요·금 시대의 기와와 도자기 조각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고성자 산성은 요하 상류 일대의 다른 고구려 산성에 비해 지류 안쪽으로 상당히 들어온 지점에 위치한다. 철령 최진보 산성과 청룡산 고성을 비롯하여 개원 마가채 산성과 용담사 산성 등이 송요 대평원에서 요하 지류 연안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한 반면, 고성자 산성은 청하 하류에서 약 40㎞ 정도 들어온 중상류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제외하면 이 산성은 여러 측면에서 요하 상류 일대의 고구려 산성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입지 조건에서, 하천과 나란히 달리던 산줄기에서 하천 연안으로 돌출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축성 방식에서도 산성으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판축 기법을 이용하여 제방과 같은 거대한 토축 성벽을 구축한 반면, 성을 둘러싼 산등성이에는 대체로 흙을 성토한 토벽 또는 토석 혼축의 성벽을 쌓았다. 이에 요하 일대의 다른 고구려 산성과 비슷한 시기에 쌓았고, 성격과 기능도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자 산성에서 청하 상류를 따라 동남쪽으로 가면 혼하·휘발하의 분수령으로 나가며, 여기를 통해 압록강 중류 일대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송요 대평원에서 청하를 거쳐 혼하나 휘발하 일대로 나아가는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이라 보인다.

한편 고성자 산성은 둘레 1.1㎞로서 대체로 중형급 산성에 해당하지만, 주거용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성 안에는 동서 방향의 평탄한 골짜기가 두 갈래로 길게 놓여 있고, 산등성이 안쪽 경사면도 아주 완만하여 주거용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성벽 안쪽 거의 전 구간에 병사용 주거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아 내부 공간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일반 주거용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못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비탈에서 토기 조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또한 서벽 안쪽의 대지에서 기와 조각이 다량 나온 것으로 보아 군사 방어 뿐 아니라 지방 지배를 위한 거점성의 기능을 지녔다고 추정된다.

참고문헌
  • 여호규,『高句麗 城』Ⅱ(國防 軍史 硏究所, 1999)
  • 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滙編』上(哈爾濱出版社, 1994)
  • 曹桂林·王鐵軍, 「鐵嶺境內五座高句麗山城簡介」 (『遼海文物學刊』1994-2, 1994)
  • 周向永·趙俊衛·李亞冰, 「遼寧開原境內的高句麗城址」 (『北方文物』1996-1,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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