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심사 일기』

한자 瀋槎 日記
중문 沈槎日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요령성  
시대 조선/조선 후기
상세정보
성격 연행록(燕行錄)
저자 박래겸(朴來謙)
표제 심사 일기(瀋槎 日記)
저술 시기/일시 1829년(순조 29)
소장처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1 서울대학교
간행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3가 53번지 성균관 대학교
정의

1829년(순조 29) 청나라의 도광제(道光帝)가 심양(瀋陽)을 순행할 때 조선에서 파견된 심양 문안사 중 서장관(書狀官) 박래겸(朴來謙)이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일기.

개설

『심사 일기』의 저자 박래겸[1780~1842]의 자는 공익(公益)이고, 호는 만오(晩悟)·탑서(塔西)이며, 본관은 밀양이다. 본서는 박래겸이 1829년 심양 문안사의 일원인 서장관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할 때 보고들은 내용을 기록한 일기이다. 19세기 전반 심양의 다양한 풍속과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들의 교류 양상을 살필 수 있다.

편찬/간행 경위

『심사 일기』는 1829년 4월 청나라 도광제가 심양에 있는 선대 황릉(皇陵)을 배묘하기 위해 행차하였는데, 이 때 청나라에서 조선에 자문(咨文)을 보내 어가를 접대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에서는 ‘심양 문안사’라는 이름으로 사신단이 차출되었는데, 정사(正使)에 판중추부사 이상황(李相璜), 서장관에 박래겸이 차출되었다. 심양 문안사 일행은 같은 해 7월 16일 출발하여, 8월 29일 심양에 도착하였고 10월 24일에 귀국하였다. 본서는 이 기간 동안 저자가 오고 가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서지적 상황

『심사 일기』는 1책 65장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는 동명의 서적[규장각 古 4850-1]이 소장되어 있다. 대동 문화 연구원에서 편집한 『연행록 선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형태

『심사 일기』는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심사 일기』는 「심사 일기」, 「문견사건(見聞事件)」, 「반조(頒詔)」 등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심사 일기」는 서장관에 제수된 뒤 7월 16일 서울을 출발하여 같은 해 10월 8일 귀국할 때까지의 내용을 기록하였다. 노정에서 보고들은 내용을 기록하였다. 「견문사건」은 저자가 심양에서 보고 들은 사항 중 특기 사항을 10항목으로 정리한 것이다. 「반조」는 청나라 도광제가 봉천부(奉天府)에서 반포한 조칙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는 일기에서 도광제를 알현한 공식적인 기록 이외에도 당시 심양 고궁(瀋陽古宮)과 같은 명소나 풍경, 습속 등을 기록하였다. 태평거(太平車)라는 수레의 제작과 운용 방식을 비롯해 ‘양한지[養漢的]’라 하여 조선의 창녀와 비슷한 여인의 모습, 그리고 재주를 부리는 원숭이의 모습 등을 기록하였다. 상가집에서 음악이 울리는 것에 놀라 이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또한 심양에서 병자호란 당시를 회상하면서, 척화를 주장했던 삼학사(三學士)[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의 충절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본서는 이밖에도 저자가 심양에서 생활하면서 만났던 태학 조교 무공은(繆公恩), 예부 정랑 각라항안(覺羅恒安) 등과의 대화 내용이나, 진경선(陳敬宣)의 집에 방문했던 기록 등을 수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대중국 사행 기록의 대부분은 연경(燕京)을 방문한 것이다. 이에 비해 본서는 심양을 방문하고 견문한 바를 남긴 기록이기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당시 조선 지식인의 눈에 비친 심양의 모습과 심양을 바라보는 인식을 확인하기에 유용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박동욱, 「박래겸의 『심사일기』 연구」(『온지 논총』36, 온지 학회, 2013)
  •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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