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분류

5호 가정

한자 5好 家庭
영문 5haojiating
중문 五好家庭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길림성  흑룡강성  요령성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대 초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4년
관할 지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관할 지역 길림성 매하구시
정의

중화 전국 여성 총연합회의 발기로 1950년대 초부터 중국 내 모든 민족이 참여하여 전개한 전국적인 현대 문명 가정 쟁취 활동.

개설

중국 건국 초기, 사람들은 구 중국이 남겨 놓은 사회적 갈등과 모순이 새로 탄생한 인민 정권을 위협한다고 인식하였다. 이 가운데 오랫동안 전해 내려 온 봉건적 악습과 가부장적 관습이 심각한 사회 모순을 유발하고 각종 폭력과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지적되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처럼,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안정을 이룩하자면 반드시 가정부터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였다.

‘5호 가정’ 운동의 동기와 내용

이러한 인식에서 중화 전국 여성 총연합회는 1950년대 초부터 전국적으로 ‘5호 가정’ 쟁취 운동을 발기하였다. 문명 가정으로 일컫는 ‘5호 가정’ 쟁취 활동에는 중국 전 지역의 모든 조선족 가정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5호 가정’이란 준로 애유(尊老愛幼), 남녀 평등(男女平等), 부부 화목(夫婦和睦), 근검지가(勤儉持家), 이웃화목[鄰里和睦]’을 의미한다. 그 기본 정신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부 내용의 수정과 조정이 있었다. 이를테면 초창기에는 ‘근검 건국, 근검 지가’란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활동이 진행하였다. 이후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이 추진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활동내용도 풍부해졌다.

새로운 시기의 ‘5호 가정’ 활동은 문화 혁명 시기에 침체되었다가 1970년대에 다시 회복되었고 1980년대에는 더욱 활발히 전개되었다. 1990년대에는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되면서 정신문명 건설을 주요한 내용으로 포함하였고, 2000년 후부터는 ‘가정 문명 공정’을 실시하고 있다.

‘5호 가정’의 새로운 조건

새로운 시대가 되면서 ‘5호 가정’ 선정 조건도 새롭게 등장하였다. 현재의 기준은 "첫째, 나라를 사랑하고 법을 준수하며 공익 사업에 진력한다. 둘째, 학습 진보하고 일터를 사랑하며 경업한다. 셋째, 남녀가 평등하며 준로 애유한다. 넷째, 낡은 풍속을 바꾸어 아이를 적게 낳되 우수하게 키운다. 다섯째, 부부가 화목하고 이웃과 단결한다."이다. 동시에 ‘5호 가정’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고 어제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풍이 조성되면서 '5호 가정'은 지역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자리잡게 되었다.

조선족과 ‘5호 가정’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비롯하여 동북 3성, 나아가 전 중국 내의 조선족 가정들은 그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5호 가정’ 활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오늘날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모두 70만 세대의 가정이 있는데, 2014년에는 ‘가정 건설의 해’ 활동을 전개하여 ‘행복한 가정’ 건설로 ‘행복한 연변조선족자치주’ 건설에 일조하였다. ‘신 5호 가정’ 평의 선발 활동을 펼치면서 서로 존중하는 고부간, 화목한 부부, 효녀 효자, 화목한 이웃 등의 항목으로 모범 가정을 선출하였다.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수많은 ‘5호 가정’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화룡시(和龍市)이문철은 전국 제4차 ‘5호 가정’ 칭호를 수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국 애유 모범 본보기로 명명되었다. 이문철은 일반인으로서 1974년부터 부인과 함께 150여 명의 고아들과 빈곤 학생들을 보살피거나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새롭게 부모의 사랑, 인간의 참된 정을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나라와 사회의 유용한 인재로 키워냈다. 그들이 도운 아이들 가운데 50여 명이 대학에 입학했고 3명은 연구생으로 진출했다. 또한 10여 명은 이문철 가정의 도움으로 한국, 일본, 미국에서 유학할 수 있었다.

길림성 매하구시이영길 가정은 전국 ‘5호 가정’으로 뽑힌 모범 가정이다. 이영길은 남편 김성룡이 16세에 참군하여 수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부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오자 군소리 한 번 없이 그의 팔과 다리가 되여 50년간 동고동락하면서 평생을 살아왔다.

참고문헌
  • 「연길시 10년래 5호 가정 활동 성과 달성」(『연변 일보』, 1984. 3. 11.)
  • 「당신의 팔과 다리가 되여 25년」(『길림 신문』, 2007. 5. 17.)
  • 「《행복 가정》건설로 《행복 연변》건설」(『연변넷』, 2014. 3. 10.)
  • 「사랑의 천사 될 터」(『흑룡강 신문』, 201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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